brunch

자폐맘을 향한 시선 '어쩔수가없다'

[31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by 마이 엘리뷰

아나운서. 다수에게 주목받는 게 일상이었던 직업을 가졌었는데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운 순간이 생겨났다. 아이 한번 보고 엄마를 쓱 올려다보는 시선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그 누군가의 '쳐다봄'이 머쓱할 때가 종종 있다. 한국나이 여섯 살 신경다양성 아들과 데이트를 나갈 때가 바로 그 별난 주목의 모먼트.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행동을 할 때면 ㅡ특히 그러한 공간이 엘리베이터라든지, 소아과 대기공간이라든지, 실내 제한된 공간이라면 ㅡ더더욱이 그렇다. 여느 아이들이나 그렇듯,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빙빙 주변을 맴돌 때가 있는데 거기까지는 당연히 오케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주변시선 주목 100퍼센트 당첨이다. '콩콩 제자리 점프'를 한다거나 '귀를 팔랑팔랑 만지작' 거릴 때,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꽤나 멀끔하고 잘생긴 (도치맘 모드여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평범치에서 살짝 어긋난 행동을 할 때, 주목받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지극히 평범한 카페 안에서 아들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일 때면 힐끗힐끗 훑는 시선을 종종 느낀다. 커피는 달다가도 쓰고 텁텁해진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내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바로 극 중 만수 (이병헌)의 딸 리원 (최소율)의 얼굴이었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면서 뜻하지 않게 한 가지 능력(?)이 생겼다면 신경다양성 아이를 꽤나 빠르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 ABA 행동치료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료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구나' 금방 알아보잖아요!' 발달장애 아이들의 몸짓을, 그들의 표현 패턴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는 이야기. 치료사이면서, 동시에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1인 2역을 담당하고 있는 나 역시 그렇다. 물론 '우리 세계'라고 묶어 지칭하는 게 과연 같은 편 먹어 든든한 일인지, 자발적 소외를 지향하며 외부와 선 긋는 일인지 얼핏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결국엔 '우리 세계의 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웃픈 재주라는 게 있긴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장어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리원이를 보면서 '아, 혹시! 우리 세계의 아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역시 그랬다.


[이미지 춀처. CGV 공식홈페이지]영화 속에도 자폐성 장애 아동이 등장한다. 자폐라는 단어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N년차 자폐아이 맘이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주인공 만수(이병헌)와 미리 (손예진) 부부는 단 한 번도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라서 고민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긴축 재정 모드 때문에 다른 건 포기해도 아이의 남다른 재능 분야, 첼로 레슨은 놓지 않으려 하는 모습, 밥 한 술보다 첼로인 아이의 식사를 챙기려 한술 한술 정성 들여 떠먹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신경다양성 아이'이기 때문에 난감해하거나 불편해하는 모습은 대사에서도 행동에서도 딱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수가 운전 기어를 잘못 설정해 요란한 소리가 났을 때, 리원이가 차에서 귀를 틀어막으며 발버둥 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엄마인 미리는 당황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얘가 또 이래! 제발 그만해"라고 리액션하는 대신 운전하다가 찌질하게 당황한 남편을 탓한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운전이 서툴러서 그래." 청각에 예민한 아이의 행동을 많이 겪어왔다는 듯, 익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마치 자폐엄마의 현실판을 보는 듯했다.


사실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게 '일상'이 되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차차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영역에 자리하게 된다. 영화 속 만수네 네 식구가 그러했듯이 리원이가 좋아하는 것을 '지켜주려고 하는' 마음이 또렷해질 뿐, 아이가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사로잡혀 일상을 잠식당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첼로 연주 영상을 텔레비전 너무 가까이에서 본다고 뒤로 '쭉' 끌어내는 손예진의 몸짓은 여느 평범한 육아맘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남편이 치통을 앓는다고 고민을 털어둔 미리의 모습은 있었지만, 자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걱정하는 미리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리원이를 앞에 두고 어두운 낯빛을 드러낸 적이 없다. 특별한 아이를 딱히 평범한 육아 장면들과 다를 것 없이 키워가는 덤덤한 모습들이 사실은 진짜다. 내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무릎을 딱 찬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이가 자폐인데 특별하게 언급해두지 않는 것. 그것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스토리가 꼬이지 않는 것.


자폐 N년차 맘이라면 '적응'의 킹이 된다. 아이의 표현방식이 다소 거칠고 어색할 때가 있다는 것에 차차 익숙해지는 데 적응해 가는 것. 리원이는 경제사정상 잠시 집을 떠나 있어야 했던 강아지 '시투'와 '리투'가 그리워 개집에 들어가 누워있곤 하는데, 그런 아이의 돌발행동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건 일상이 된다. '쟤가 도대체 왜 저러지?' 더 이상 한숨 쉬지 않는다. 내가 한 말 그대로를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기가 막히게 떠올려서 그대로 읊을 때도 잦은데, "어머, 그 얘기를 왜 맥락도 없이 지금 해?"라고 반응하지 않는 짬이 쌓이는 셈이다. 스크린 속에서 리원의 오빠, 시원도 여동생이 기가 막히게 누군가의 말을 외운 대사처럼 그대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걸 이상해하거나 따분해하지 않는다. 때때로 아빠에게 잔소리하기 위해 재미지게 써먹기도 하는 모습이니까.


[이미지 춀처. CGV 공식홈페이지]박찬욱 감독 작품 안에서 눈 여겨 볼 포인트는 너무 많지만, 리원이의 표정과 대사, 이야기에 가장 먼저 눈을 두게 되는 건 ‘어쩔수가없다’


아이의 독특한 표현방식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주목받을 때 되려 어색해지는 이유다. 나는 이미 아이에게 적응을 했는데, 이 세상에는 내 아이가 말하는 흐름과 행동하는 방식이 흠칫 돌아보게 되는 얼굴들이 아직 훨씬 많으니까. 내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을 꼬깃꼬깃 넣어두는 데는 사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다. 갑분 커밍아웃에 상대방이 적당한 리액션을 찾지 못해 적잖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당황하는 표정을 취하도록 하는 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게는 "내 주변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는 공감형식의 위로를 건네시는데 실은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위로받을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나의 리액션 또한 같이 '어정쩡함'의 어딘가에 쑤욱 빠져든다. 대화의 핑퐁이 자꾸 엉뚱한 늪을 향해가는 것 같아서 내가 더 미안할 때가 많다. "저는 진짜 괜찮거든요. 위로해줘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두셔도 괜찮아요."


아고 어쩌다가
이런 아이를 키울까
아휴, 엄마 힘들겠네


아이가 독특한 몸짓을 할 때, 반플랫톤으로 특정단어를 반복해 이야기할 때 나를 흘깃 쳐다보는 시선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저 엄마의 육아가 예사롭지 않겠다는 동정을 품고 있는 거라면 그나마 고마운 마음. 에고 어쩌다가 저런 아이를 낳았을까. 누군가의 탓이나 무언가 손에 잡히는 원인을 가늠하려는 마음이라면 조금 선 넘으셨고요. 트럼프가 최근 자폐스펙트럼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언급한 타이레놀은 나는 두 번에 걸친 임신기간 동안 입에 대본 적도 없으니, 근거 없는 우스운 상상은 해두지 않으셔도 된다.



'자폐스펙트럼 아이인가 보다' 얼핏 눈치채셨다면 우리 모두 영화 속 손예진이나 이병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독특한 게 보이니 아이 한번, 그 곁에 엄마나 아빠 한번, 쓱쓱 올려다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치자. 다만 그 아이가 첼로 음악에 취해있으면 "어머, 첼로를 너무 좋아하는구나", 그 아이가 자동차 바퀴에 홀려있으면 "우와, 자동차 박사가 따로 없네" 그냥 예사로운 대꾸 한마디만 해주는 걸로 충분하다는 걸 밝혀둔다. 자폐스펙트럼, AUTISM 아이를 키워가는 엄마의 여정은 우리 아이 MBTI 중 알파벳 한 글자가 "T야, F야?" 하는 것처럼 AUTISM의 첫 글자 A아들과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눈을 살짝 내려 뜨고 함께 슬퍼해줄 필요도, 삶이 참 녹록지 않다고 꺼이꺼이 어둡게 느껴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길.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향한 시선이 무거움이나 당황스러움이 함께 실리지 않을 날을 꿈꿔본다. 물론 아들이 엘베에서 콩콩 거리며 연신 제자리 점프를 하거나 갑분 노란색 테슬라를 사러 갈 거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귀여워서 쳐다보는 건 역시 '어쩔수가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일상이 되면 어려울 것도, 쓰디쓸 것도 없는 신경다양성 세계
독특하고 유별난 구석은 많지만, 영화 속 리원이의 첼로 사랑에 감탄하듯, 아들에게도 감탄할 만한 남다른 자질이 많아서요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