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내 차에는 장애인 주차권한을 의미하는 하얀색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이가 신경다양성 아이라고 해서 모두 '보행상 장애'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자폐성 장애로 복지카드를 받았음에도 장애 정도에 따라 (심한 장애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장애에 대한 심사는 국가가 정한 주기별로 재 심사를 받아야 하니 그 권한이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자폐성 심한 장애'로 최종진단을 받았고, 특히 보행 시 뭔가 특정할 만한 이슈가 있다면 보행상 장애를 인정받게 된다. 아직 아이가 운전할 수 있거나 실질적으로 차를 소유하지 않는 미성년일 경우, 아이와 주로 함께 이동하는 보호자의 차량을 장애차량으로 등록해두곤 한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아들은 보통 이상의 감각으로 차를 좋아한다. 바퀴 달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장난감 자동차는 웬만한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선호하기 마련인데 돌 무렵부터 하루 종일 동그란 바퀴만 굴려대던 첫째는 선호의 농도가 정말 남달랐다. 예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카 마니아'로 자라났다. 지나가다가 차의 옆 라인을 스치기만 해도 찰떡같이 어떤 브랜드의 무슨 라인인지 대답해 내고 나와 친한 지인들의 이름이나 호칭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타고 내렸던 차로 기억한다. 아들의 텐트럼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의 특효약이 기계 세차장에 들어갈 때라서 남편은 아들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짜증을 부릴 때, 비 오는 날조차 기계세차장을 찾곤 했다. 장난감 미니카 수집광인 건 말해 무엇하리오. 시끄러운 자극에 민감한 아이인데도 한국에서는 대형아파트 단지나 대형몰에 가는 걸 좋아한다. 왜? 층층이 주차장이 있고 차가 무수히 많으니까!
나도 남편도 자동차 브랜드 로고에 무감각한 부류였는데 아들내미의 엄청난 차량 수집과 선호 덕분에(?) 덩달아 차에 관한 잡학이 쌓였다. 아이가 어릴 땐 최대한 아이의 동기와 흥미를 지켜주면서 아이 손 가는 대로 관심사를 따라가 주고 싶건만, 과하면 어찌 됐든 탈이 나기 마련. 차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조심해야 할 순간에 충분히 주의하지 못한다는 허점이 있었다. 좋아하는 차량이 보이면 외부의 어떤 자극도 잘 보이질 않아서 무작정 차로 달려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너무 위험했던 몇 번의 순간 때문에 나와 남편이 공포에 새파랗게 질린 적이 수차례 있었다. 하나에 꽂히면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쉽지 않은 자폐성 장애 아이, 보행상 장애를 인정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둘 수 있는 새파란 권한을 얻게 되었다.
같은 자폐성 장애 엄마들이 치료실에 모일 때면 입을 모아 하는 소리들이 있다. 발달장애라고 해서 국가에서 딱히 주는 혜택도 없는데 그나마 보행상 장애라도 인정받으면 아이랑 다니기는 편하다고. 그게 그나마 가장 유용한 혜택이라고. 실로 그렇다. 나도 아이가 한국에서 보행상 장애를 인정받았을 때가 가장 마음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아, 이젠 주차할 곳 없어서 빙빙 돌다가 아이가 결국 수많은 차를 스치며 흥분하는 일은 없겠구나', '건물 출입구 멀리 떨어진 곳에 간신히 주차하고 이동하다가 차만 보면 뛸 듯이 좋아하는 애가 뜀박질해나갈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찔한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장애인주차 스티커를 받고 일주일쯤은 그랬다.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형 키즈카페에 방문했던 날, 든든했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장애인 주차구역 스티커를 붙인 뒤 가장 화가 났던 날이었다. 공공기관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다고 화가 난 것도 아니요, 파란 구역에 권한 없는 누군가가 불법 주차를 해서 속이 상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불법 주차 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곳에 좀처럼 떡하니 주차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자리만 피해 켜켜이 덧대어 놔서 차 진입을 가로막을 뿐이지.
잠실 한복판이다 보니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는 고지가 있어서 혹시 몰라 출발하기 전에 미리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나요?" 확인부터 해뒀던 터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기관관계자의 말처럼 장애인 주차구역은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공간은 비어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도 진입로를 막은 여섯 대의 차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장애아이가 여길 오겠어
오늘 여기에 굳이
주차할 사람이 있겠어
키즈카페에 장애아이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기관에 다시 전화를 걸어 장애인 주차 구역에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더니, 전 시간 아이들이 아직 놀고 있어서 나갈 때까지는 자기들도 별 달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단다. 자폐성 장애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쯤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빈 주차 구역에 주차하지 못해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탔다가, 몇 바퀴를 빙빙 돌다가, 기관에 전화를 걸어서 주차할 방법이 없겠냐고 몇 번씩 통화를 하는 사이, 우리 집 첫째는 그야말로 제대로 터져버렸다.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힘들어하는 신경다양성 아이에게 이런 상황은 정말 재앙이다. 1. 키즈카페 건물 도착했다. 2. 주차한다. 3. 들어간다 - 삼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져야하는데 나라고 이럴 줄 알았겠냐고. 아들은 오랜만에 초고도의 텐트럼이 터졌고, 박박 울어대는 오빠 옆에서 동생도 무서우니까 공포에 질려 울었다. "아놔. 진짜 미쳐버리겠네."
장애인 주차 구역 진입로를 막고 있던 맨 마지막 꽁무니 차가 빠져줘서 '간신히 들어갈 수 있겠다' 생각했던 차, 주춤주춤 하던 틈을 타서 새로운 차가 등장해 그 꽁무니에 차를 대기 시작한다. "저기요!" 창문을 톡톡 두드렸더니 자기가 여기 먼저 들어왔다고 입모양을 뻐끔거리는 한 아빠. "아니요, 여기 대려는 게 아니라, 장애인 주차 구역 들어가는데 지금 막으시면 안 된다고요" 이미 화가 잔뜩 난 나를 한번 쓱 보더니 내 뒤로 또 바득바득 울고 있는 차 속 두 아이를 훑는다. "건물 관계자에게 문의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본인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주차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기한테 따지느냐는 표정과 함께. 같이 있던 차량 속 아내는 나를 흘겨봤고, 차에 타고 있던 그 집 아이도 '저 아줌마 왜 저렇게 화났는지' 겁먹은 표정이다. 애 둘 데리고 '서울형' 키즈카페 좀 가보겠다고 혼자 호기롭게 나선 나는 그날 마음 상해서 열받은 짜증 투성이 아주미가 되었을 뿐이었다. 어찌어찌 주차는 했는데 결국 화가 잔뜩 나서 좀처럼 얼굴이 펴지지 않던 나는 주변의 엄마 아빠들 시선에 1시간 만에 애둘 끌고 키즈카페를 탈출했다. "여기 별로 재미없다. 그치? 장난감이나 사러 가자"
미국이어도 이랬을까
미국에서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어느 정도로 진지할까
그날 이후 종종 한국과 미국을 저울질했다. 미국에서는 아직 장애인 주차구역에 대한 경험치가 없는 터라,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한국에서처럼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은 없지 않을 것만 같았다. 땅도 넓은데 굳이 장애인 주차구역 진입을 막을 차가 있을까도 싶었고, 도심 인기 지역에 아무리 주차할 데가 없다 해도 장애인 주차마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침범할 비감수성은 없겠다고 상상했다. 카페가 어린아이 한 명만 들어와도 수십 초 동안 문을 잡아주고 배려해 주는 동네잖아.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지는 않지만 주차구역에 대해 진지하게 배려하지 않는 한국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여전히 상상해두고 있다.
나라고 내 삶에서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권한을 갖는 사람이 될 거라고 예상했겠는가. 0.0001퍼센트도 예측하지 못했던 삶이 일상이 되었다. 주차장 입구 명당, 파란 색깔 구역은 내가 차를 둘 곳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지, 정확히 어떤 장애를 어느 정도로 가지고 있어야 주차할 수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막연히 지체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 분들이 그럴 수 있겠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신체활동이 역동적일 수밖에 없는 키즈카페 시설에는 얼핏 장애아이가 방문하지 않을 거라고, 혹은 장애 부모가 등장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 나름대로 예측해 두는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을 것이니 최소한 그곳에 불법주차는 하지 않아도, 진입을 미리 배려해 둘 필요는 없겠다고 결론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자폐성 장애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신체 활동량이 많다. 발달장애이니 전반적으로 발달이 느린 아이인 건 맞지만, 대근육 발달만큼은 '느리지 않아서' 얼핏 무서워 보이는 장애물 건너기도 박수받을 만큼 잘 해낸다. 게다가 오빠가 장애를 진단받았을 뿐이다. 남매 중 비장애 형제 아이도 키워간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합법적인 주차를 하고 차를 나설 때면 '도대체 누가 장애라는 거야?' 아이들을 이리저리 훑어대는 따가운 시선도 스친다. 이유가 있어서 의료진의 소견에 덧대어 국가로부터 정당한 권한을 인정받았음에도, 장애인 주차구역에 들어가지 못해 진입로를 가로막은 차들에게 일일이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 때때로 초라하고 볼품없어 뵌다.
너무 화가 나서 씩씩 대면 누군가를 나를 '투사'같다고 외면할 거고, 잠잠하지 못하고 거칠다고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건 모르겠고, 우리 애가 오늘 차 변수 때문에 화 좀 덜 냈으면 좋겠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한국에서 그 일을 겪은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날을 트라우마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 좀 못하면 어때서", "그렇게 아이가 특별하면 근처 유료주차장이라도 찾아보고 바로 가면 되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혹은 "아니, 애가 그렇게 차가 예민한데 외출을 해야만 해?"라는 쓰디쓴 눈빛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장애인 주차 구역을 눈앞에 두고도 주차를 못해서 하루를 몽땅 날리는 장애인 가족이 있을 수 있음을 누구 한 사람이라도 생각해 준다면 고맙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아이마다 보이는 양상이 제각기 달라서 말 그대로 '스펙트럼'이지만 변수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예측지 못한 상황, 이를 테면 엄마가 당황하는 표정,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는 몸짓 등에 아이는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분노게이지를 올린다.
그 뒤로 키즈카페에 정상 입장한다 한들 뭐 하겠나. 결국 아이도 나도, 이미 몸과 마음은 울다 지치고, 악 쓰다 지쳐서 만신창이 상태. 누군가의 시선처럼 얘랑 그냥 아무 데도 안 나오는 게 평화의 길이려나!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닐 단 몇 분의 주차장 에피소드가 장애 가족에게는 엉망진창 하루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진짜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앞에서 주차장 딱 한 사람만 도와줬어도, 기관에서 딱 한 명의 직원만 나와줬어도 좋았을 텐데... 깊이 새겨진 상처는 나을 줄을 모른다.
미국에서도 얼마 전, 아이가 뵙는 교수님으로부터 보행상 장애 소견을 받아, 미국 교통 관리국으로부터 장애인 주차구역 권한을 최종승인 받았으니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떤 것이 되었든, 장애를 인정받고 살아간다는 것에는 혜택이 주어져도 불편함이 뒤따른다. 미국이라고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아닐 것이다. 분명 또 어떤 에피소드는 릴레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덤덤히 생각해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겪었던 주차장 진입 트라우마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실랑이는 그 어떤 나라의 주차장에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가 소리치며 울만큼, 내가 투사처럼 화낼 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피해 주차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구역인 찐 생각해 주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새파란 마음.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