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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핸드폰을 두고 나가기로 했다

[1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새벽녘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으로 내 몸 오른편, 왼편을 더듬더듬 휘적휘적. 바로 핸드폰을 찾는 일이다. 분명히 말랑한 베개에 등을 기대어두고 아이 물티슈를 주문하겠다고 앉았던 기억이 있는데, 주문을 끝내해두기는 했는지 기억이 멍하다. '아이고야... 나 결국 주문 안 했네.'


새벽배송 찰떡같이 해주는 온 국민의 애착 앱에 접속했었는데, 내 손은 또다시 어디로 향했던가. 인스타그램을 열어 육아 공구 핫한 게 있나 살폈던 것 같고, 공구가를 살피다가 이내 아이랑 주말에 어디 가지? 싶어 신상 키즈카페를 소개하는 릴스를 봤다. 보다 보니 워킹맘의 출근룩을 봤고, 벌써 도톰한 가을 옷을 파는 걸 보니 내 옷보다는 아이들 옷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자주 찾는 브랜드의 공식 소셜 계정을 열어서 디자인도 살폈다. '에이, 이번 시즌 캐릭터는 딱히 끌리는 게 없네?'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곧 다가오는 연휴에 가을 여행상품을 홍보하는 피드가 눈에 띄어 스크롤링 '파바박' 했던 기억까지는 슬그머니 남아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껴안고 잠들었겠지. 왼쪽 어깨라인을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온 핸드폰은 내 겨드랑이에서 숨도 못 쉬고 박혀있다가 뒤척뒤척하는 사이 베개와 침대 모서리 틈에 끼여버렸다. 결국 물티슈는 주문 못했고 내 보랏빛 핸드폰은 얼마 전 소셜 핫딜로 구매한 신상 케이스를 껴입고서도 꼬질꼬질 지쳐 보였다.


이 찝찝한 밤의 루틴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차라리 드라마를 볼 걸! 매일 아침에 반복하는 후회의 한 마디 되시겠다. 뭐라도 1시간 남짓의 작품을 시청했다면 로맨틱한 스토리 하나는 가슴속에라도 뭉클하게 남아, 달달한 에너지의 뿌리라도 되어주었겠다. 요즘 같은 숏폼 전성시대에는 50분 한 편의 드라마에 두는 집중력마저 너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 드라마는 '정주행 해야지'라는 다짐이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나. 5분 견디다 못해 끄고, 15초짜리 숏폼을 봤다가, 육아용품을 검색하다가, 주말에 가 볼 맛집을 뒤적거렸다가, 내일 갈 카페의 동선을 지도앱으로 살폈다가, 아이의 어린이집 알림장에 끄적끄적 뭘 쓰다가, 뭐 하나 제대로 완결하지 못한 채 잠이 드는 이 루틴. 동동동 떠다니는 징검다리를 불안정하게 뛰어건너는 것과 닮았다. 언제부터인가, 어디에서부터인가, 단단히 몸짓이 꼬였는데, 엉킨 상태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 꼬불꼬불해진 루틴마저 롤러코스터처럼 즐기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아, 이젠 진짜 아니다. 아이폰 최신모델이 나왔다고 가격과 디자인을 무한 검색할 때가 아니었다. 핸드폰 자체와 잠시 쿨하게 '이별' 하는 작업이 절실했다.


단1초도 핸드폰을 놓치 못하는 일상, 쿨한 이별이 필요했다


나 오늘
핸드폰 두고 나간다

하루만 핸드폰을 두고 나가기로 했다. 포인트 적립부터 결제까지 핸드폰을 꺼내 페이 기능을 쓰는지라, 이게 과연 오기로 불쑥 튀어나온 말인지, 진짜 현실성이 있는 선언일지 1분 정도 고민했는데, 폰 따위에 이토록 의지하고 살아가는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자주 쓰는 신용카드 한 장 잘 챙겨나가면 되지 않겠냐며 호기를 부렸다. '이따 카페에 한 번은 갈 텐데, 적립하는 바코드는 어떡하지?' 생각했다가, 핸드폰 전화번호로 적립가능한 카페로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간단히 생각했다. 애들한테 "유튜브 영상 좀 그만 봐! 응? 응?" 하는 잔소리가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는 걸 허무해할 게 아니었다. 엄마인 나조차 이토록 폰 없이 안 되는 일상을 사는데 아이들이 핸드폰과 친한 걸 누굴 탓하랴. 그래, 일단 해보자. 딱 한 번이라도 그 마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하루를 시작해 보자.


오늘 하루 ‘핸드폰 없이’ 정말 괜찮을까?


9:10 AM.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뭔가 허전하다. 대개 아이가 들어서는 순간 '띠링' 등원 알림이 떠야 하는데 아무 소리가 안 나니 등원 체크인이 제대로 된 거 맞나 싶었다. 애먼 기계 불통 탓을 하려다 보니, '아, 맞다! 나 핸드폰 없지?' 이쯤하면 알람받는 것도 중독이다. 오늘 잘 보내라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라고, 남매랑 하이파이브 팍팍! 하고 돌아서려니, 아차차 싶은 것 하나.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와서 오늘 낮엔 키즈노트 못 보겠네? 선생님들이 아이들 낮잠시간에 쏴주시는 앱 알림장을 못 본다는 생각에 왠지 서운했다가, '그래 저녁에 육퇴하고 살펴봐도 되지' 마음을 워워 가라앉힌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애들 입힌 가을맞이 등원룩이 참 예뻤는데 사진 한 장을 못 찍었다. 핸드폰 디톡스 하려면 일단 디카부터 사야 하나? 디지털을 털어버리겠다고 나섰는데 디지털카메라 초특가를 빨리 검색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걸 어쩐다? 찍은 사진이 없으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거리도 없네. 핸드폰 하나 없다고, 매일 반복하는 등원루틴의 절반이 훅 날아간 느낌이 든다. 스토리를 올리는 대신, 아이들 떠난 내 주변을 돌아본다. 오,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네. 바람도 선선하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실시간 키즈노트 알림은 못보겠지만


10:20 AM.

등원 전쟁도 마쳤겠다, 아침 운동하러 헬스장 출석! 러닝머신부터 천국의 계단까지 쫙 훑고 '오. 운. 완 (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찍어두려는데, 또 한번 깊은 깨달음. '아, 나 핸드폰 없지?' 이쯤 하면 등원룩 인증샷부터 운동 인증샷까지, 적잖이 '인증'하는데 길들여진 일상을 살아왔구나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영어 듣기 좀 했다고 인증하고, 언어영역 문제집 좀 풀었다고 빼곡하게 인증하는 일상은 아니었다. 인증 안 하면 '뭘 하지 않은 것 같은' 일상이라니, 찍어두지 않는다고 나의 발자취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상당한 '불신'의 영역에서 격렬히 살아냈던 것 같아서 스스로가 짠했다. 오늘의 인증은 생략! 대신 러닝머신을 탄 자리에서 내다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눈으로 찍어둔다. 오늘은 저 나무를 보면서 빨리 걸었지. 아직은 초록인데 몇 주 뒤면 울긋불긋 해질 테지!


오운완 인증 좀 안 하면 어때서!



인증 안 하면
뭘 하지 않은 것 같은 일상이라니
불신의 영역에서
격렬히 살아냈던 것 같아
스스로가 짠했다



11:00 AM.

핸드폰이 없어서 제법 불안해졌던 무렵은 다름 아닌 11시. 인스타그램의 육아 인플루언서들의 꽤 많은 공구 오픈시각은 오전 11시다. 아, 오늘 애들 자석칠판 열린댔는데, 그거 11시 아니었나! 아, 오늘 애들 오메가 공구 시작한댔는데, 그것도 11시 아니던가! 공구까지만 결제하고 핸드폰 두고 나올 걸 그랬나. 오만가지 후회와 잡념이 몰려들 무렵, 되새기는 명언. 오늘의 핫딜은 내일도 초특가로 열릴 것이라는 진리! 안 사도 큰 일 나지 않는데 소셜미디어를 보다 보면 '견물생심'의 최절정에 이른다. 누군가가 소개하는 물건은 우리 집에도 꼭 있어야 할 것 같고, 그 핫딜 놓치면 인생 최고의 기회를 놓치는 것만 같아 땅을 치고 속상해한다. 그럴 필요 없잖아. 진짜 필요할 때 사면된다는 당연한 교훈을 자꾸만 잊었었다. 11시의 강박을 버리자고 단단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전하다면, 브런치 하기 딱 좋은 11시 햇살 누리며 11시 소비욕은 잠시 그림자에 가려두기.


12:30 AM.

뒤늦은 모닝커피 한 잔 하러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핸드폰을 오늘 두고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가장 먼저 유심히 고려했던 것 중 하나는 '카페'였다. 카페가 멀찌감치 보이기 시작하면, 모바일앱으로 쑥 주문하는 게 당연히 편했는데, 앱을 쓸 도구가 없으니 손가락 운동을 서둘 필요가 없어졌다. 스크린으로 애써 주문할 필요가 없으니, 눈을 둘 곳은 오로지 카페 풍경. 자주 오던 카페라 익숙한 장소인데도 깊어진 가을 햇살 덕인가. 오늘따라 카페 간판을 물들이는 햇살 색채가 예술이다. '날 진짜 좋다' 감탄사 한번 쫘악 품어줄 만한 날이었네.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러 온 건데 '폰 하나 없는 덕분에' 눈치 못 챘던 날씨의 변화마저 홀짝홀짝 삼키는 느낌. 카페인도 충전하고 덩달아 가을볕에 반짝거리는 에너지까지 충전해 두었다. 멀찌감치에서부터 모바일주문했던 습관 하나를 버리니 '두 가지 충전'이 가능했음에 스스로 뿌듯.


모바일 선주문을 안 하니,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카페 풍경


커피를 마시러 온 건데
날씨의 변화마저
홀짝홀짝 삼키는 느낌


15:40 PM.

아이 둘의 하원시간이 다가온다. "오늘 오후엔 뭐 하지?" 오후 한껏 애들 놀릴 공간을 찾다 보면 습관적으로 근처 실내 키즈카페를 검색한다. 고로 육아맘은 지도앱을 달고 산다. 아이들과 움직이기 쉬운 동선을 미리 인지해두려면 주차가능여부부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는 지름길 동선 등을 예습해둬야 하니까 그 어떤 앱보다 실용성 최고. 핸드폰을 두고 나오니 실시간 동선 검색이 아쉽다. 뭐, 그렇다면, 가장 만만한 곳으로 향하는 수밖에! 아파트 근처 낮은 산자락에 위치한 자연 놀이터에 가기로 한다. 운영시간이나 주차장 정보를 검색할 필요 없고, 내가 챙길 건 모래놀이 장난감과 모래가 좀 튀어도 화내지 않겠다는 너그러운 마음 정도. 아이들 모래놀이하는 장면 또 못 찍으니 뭔가 섭섭해질 뻔했는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하루쯤 사진 없이 놀면 어떠한가. 스마트폰에 담는 대신 내 두 눈 가득 모래 끼얹는 애들 에너지 담뿍 담아두면 되는 거니까.


블루라이트만 연신 쐬고
자연광을 놓쳤다


자그마치 7시간 핸드폰을 두고 나갔던 날, 나는 적잖이 핸드폰의 부재를 아쉬워했고, 후회했다. '아, 이건 찍었어야 하는데, 아! 지금 분명히 핫딜 뜰 시간인데! 아, 지금 아이 알림장 올 시간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후회의 한 켠으로 아주 개운했고, 통쾌했다. 대단히 필요하고도 효율적인 템이니까 꼭꼭 쥐고 다녔던 폰과 잠시 이별하니 나를 옭아매던 '인증' 강박도 자연스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뭘 그렇게 인증하고 올려서 공유할 게 많았나. 핫딜 좀 실시간 놓치면 어때? 어차피 그 가격 이따가도, 내일도 또 뜨고야 말 텐데. 수많은 인증과 핫딜을 내려두니 내가 자리한 곳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한번 더 풍경을 봤고, 한번 더 계절의 변화를 체감했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사진으로 찍고 끝! 했을 순간들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담아두려 애썼다.


사람들의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전정 긍긍하던 마음. 그 때문에 내가 자리한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은 그 많은 세월 동안 부지런히 삭제되고 있었다. 폰카로 사진 찍느라 사진프레임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의 그 현상을 놓쳤고, 디지털 기기 화면 바라보느라 블루라이트만 연신 쐬고 자연광을 놓쳤다. 핸드폰을 두고 나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핸드폰을 '들고 다녀서' 놓친 무수히 많은 것들이 너무 안타깝기 시작해서 큰 일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다녀서 놓친 무수히 많은 풍경과 이야기


일회용 컵 말고
텀블러에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마음처럼
쓰레기를
단정하게 분리배출해야겠다는 마음처럼


이미 놓친 것들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은 놓칠 수 없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나이 16살,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쥔 핸드폰은 그 이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매일 아침 칫솔을 쥐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상템이 됐고, 때론 내 앞에 자리한 식구들 존재보다 더 커 다래보이는 세상을 일구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건 '선을 넘기 시작하면' 화가 되기 마련이다. AI 키워드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세상, 이 시국엔 당연히 디지털 기기를 없앨 수는 없겠다만, 적어도 스스로 'OFF'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지, 나름의 의무감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마치 일회용 컵 말고 텀블러에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해 두는 마음처럼, 쓰레기는 카테고리별로 정리해서 단정하게 분리배출해야겠다는 마음처럼, 그냥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생략하는 작업에는 채워가는 절차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스크린 타임,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두는 데서 오는 공허감, 빈틈은 허무하게 내버려 둘 게 아니라, 나름의 알찬 것으로 풍성하게 메워갈 수 있어야 한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만큼의 비용을 들여 또 다른 걸 충당할 게 아니라, 내 주변에서 돈 들이지 않고 채울 수 있는 그 무언가로 나는 '자연'을 떠올렸다. 스크린에서 실시간 특가를 포착하느라 실시간 광합성 기회를 놓쳤고, 1분 1초 파바박 뜨는 릴스 숏폼을 스크롤링하느라 손가락을 사로잡혀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광경에 덩달아 있는 힘껏 박수칠 수 있는 손동작을 잃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상실'했던 것을 '복원'해가야겠다고 소박하게 다짐했다.


Digital OFF, Nature ON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이 에세이가 품은 '자연 놀이' 키워드는 아이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에세이의 출발 지점, '디지털 오프 대작전'은 단순히 유튜브 콘텐츠에 사로잡힌 내 아이들 세대만을 겨냥해 떠올린 것이 결단코 아니다. 어쩌면 디지털 기기 없이 살아오다가 청소년기쯤 디지털 기기를 마주하기 시작해, 이제는 핸드폰 없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 같은 어른들을 조금 더 생각했다. 밤마다 숏폼 시청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끊어내질 못하고, 챗gpt와는 식구와 나누는 대화보다 더 중한 가치를 쉼 없이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무해한 대체제를 떠올리고 싶었다. 비싸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그것. 그래서 나는 '자연 놀이'를 떠올렸다.


오늘 아침 마주한 아침 햇살, 황톳빛 가을 들판, 동네 뒷산에서 스친 물기 서린 풀잎, 소소한 풍경 하나하나가 스마트폰에 심취해 꼬이고 꼬여버린 루틴을 그나마 산산이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젠 어쩔 수 없잖아. 시대적 화두인데 받아들여야지' 이 시대 트렌드라는 핑계로 나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수많은 디지털을 내려놓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마침, 내년 3월부터 학교 수업 중 핸드폰 사용도 금지된다는 뉴스가 있었다. 편하고 신박하던 생활을 자꾸 '금'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을 담담히 시작해야 할 때다. Digital OFF, Nature ON. 모두를 위한 자연놀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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