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부인과 체험기 (1)
때는 바야흐로 미국 현지시각, 2019년 9월 13일 금요일. 한국은 딱 추석 연휴가 한창일 때였다. 인스타그램으로는 지인들의 송편 사진과 각종 명절 음식 먹방 사진들이 그득그득 올라오고 있을 무렵, 난 레모네이드 한병 부여잡고 영 달래지지 않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한국은 명절이라 좋겠다. 연휴라서 좋겠다. 미국에 와서 미국법을 따라야 함이 당연하거늘, 나는 부질없이 한국에서 가져온 달력을 힐끗거리며 아무 이벤트 없이 평상시 고대로 살아내야 하는 미국 일상에 괜한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 9시가 다 되어 끝난 수업에 지친 몸이 도무지 풀리지 않아서 침대에서 꿈틀대기를 몇 차례... "지금 몇 시지? 병원 몇 시까지 가야 되지? 몇 시까지만 씻고 준비하면 되지?" 게으름 잔뜩 묻은 질문만 남편을 향해 쏟아냈다. 어디 보자,,, 핸드폰으로 훔쳐본 현재 시각 11시 10분. 아이고. 일어나야 되겠네. 도무지 피곤해서 미치겠어도 일어나야 한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병원 가는 날이다.
매우 기다렸던 날, 동시에 매우 긴장되어서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득도했다. 7개월째 살고 있어도 이 낯선 나라에서 첫 병원이라니. 한국에서도 1년에 한 번 건강검진 가는 일이 아니라면 그다지 병원 갈 일이 없는 나였다. 가끔 방송에 차질있을까봐, 감기 걸릴 조짐이 있다면 일찍 가정의학과에 가서 독한 감기약을 처방받는 정도? 게다가 미국은 살러 오기 전부터 의료시스템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갖고 있던 곳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응급실 한번 다녀오는 데, 앰뷸런스 한번 타는 데 어마어마한 상상초월의 금액이 들어간다는 괴담을 들어왔던 터라, 거기선 아파도 웬만하면 참아야 되겠네.라고 이미 마음을 정해두고 온 나였다. (물론 믿을 만한 의료 보험에 잘 가입하면 해결되는 문제. 나처럼 오기 전부터 막연한 공포심을 품는 건 금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나는 꼭 병원에 가야 했다. 첫 병원은 OB/GYN, 미국의 산부인과다.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해두고 있었고,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내심 기다리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경험하는 일련의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부럽기도 했으나, 진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너무나 반갑고 감사한 일임에도 타지에서 겪어내야 할 고충들도 만만치 않았기에 걱정도 한 덩어리였음을 고백한다. 한국이었다면 집 근처 큰 산부인과 알아보고, 많이들 간다는 유명한 병원, 조리원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어떤 의사와 처음 컨택해야 할지, 내 보험 플랜과 연계된 의사와 병원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우리 부부의 큰 숙제였다. 다행히 남편 동료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메사 추세 추즈의 병원들의 범주를 좁혔고, 그중에서 우리 집과 그나마 가까운 병원, 이왕이면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선택지를 추렸다. 그리고 드디어 예약 완료! 임신 사실은 5주 차에 알았으나 병원을 예약하고 기다린 끝에 9주 차나 되어서야 첫 방문! 이제 드디어 가는 거야. (가긴 가는 건데 왜 이렇게 힘들어 죽겠니)
한국의 대부분 임신부들과 비교하자면 꽤 늦은 방문인 셈. 대개 임신 사실부터 명확히 확인받고 아기집도 잘 있나 확인하는 것부터가 첫 단추일 텐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대한 몸조심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8월 말, 9월 초, 수없이 이어지는 빼곡한 학기초 OT일정이 좀 뜨악하기는 했지만 소심해서 대놓고 빠지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출석했으니. "초기에 엄청 몸 사리고 조심해야 돼"라는 말을 들어오면서도 그럴 수 없는 스스로의 처지가 너무 슬펐다. 첫 병원 방문쯔음해서 입덧 증상은 초절정에 이르렀으니, 병원 가려고 남편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가 고역이었다. 남편과 고심 끝에 고른 우리의 첫 병원인데, 또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벌써부터 진통의 순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나중에 진통하면서 이 길을 달려와야 한다는 말이지. 와우. 하나부터 열까지 진짜 미국에서 엄마 되기 만만치 않네.
첫 방문이었던 지라 응답할 거리가 산더미였다. 병원 영어는 또 다른 영역 아니던가. 미리 산부인과 용어들을 탐색해두고 가긴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한 것투성이. 나보다 영어에 훨씬 능숙한 남편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큰 탈 없이 지나가긴 했으나 너무나 세세한 가족력 질의응답과 병력에 대한 질문들에 진땀 진땀. (한국어로 질문받았어도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질문들이 많아서 기억을 더듬더듬 대답해 내고) 다소 예민한 여성신체와 관련된 용어들을 표현할 때, 불쑥불쑥 남편에게 질문 "이게 영어로 뭐였더라?" 하면, 또 그걸 남편은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기나긴 인터뷰 끝에 세 통의 혈액이나 뽑아내고, 드디어 초음파실 입성. 드디어 보는구나.
9주 차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아기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서, '잘 있겠지'라고 믿는 게 전부였던 시간들. 내가 이렇게 입덧이 심하니 '아기는 건강한가 보구나' 추측에 의존해야 했던 지난날들이 드디어 끝이 나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배에 아무것도 안 보이면 어떡하지?" 농담을 주고받았던 터라, 초음파 기계를 갖다 대는 순간까지도 마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꼬물락 꼬물락 움직이는 젤리곰이 '짜잔' 등장해주었다. 꺄아! 네가 진짜 거기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BABY IS DANCING"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다이내믹 에너지로다가 두 팔, 두 다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니. 한국에서 주로 첫 방문하는 시기보다 다소 늦게 갔던 덕분에 아기집은 물론, 단번에 아기 심장소리, 젤리곰 형체까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힘들다고 했더니, Morning Sickness 약도 덩달아 득템. 다음 예약들을 연달아 세 건이나 잡아두고 오늘의 병원 일정 끝!
생전 처음 받아보는 초음파 사진을 마냥 신기해하며 최대한 느릿느릿 병원문을 나섰다. 꽤나 오래 이어진 초진에 지친 탓도 있었으나, 최대한 그날 그 시간의 느낌을 차분하게 담아두고 싶어서. 그동안의 구름 낀 마음들이 차츰 거둬지는 듯한 느낌이 스쳤다. '혹시라도 아기가 건강하지 못하면 어쩌나', '생각해보다 내 건강상태가 안 좋으면 어쩌나', '내 보험 플랜과 딱 맞는 좋은 병원을 잘 찾아내질 못하면 어쩌나', '혹시라도 생각했던 병원의 그림이 아니면 어쩌지', '미국 병원에 내가 적응하기 힘들면 어쩌지', '의사 선생님이 냉랭하면 어쩌지', '한국에서처럼 입덧 약을 처방받아올 수 있을까', '입덧 심한 걸 별거 아니라고 동양인인 내가 유난인 거라고 치부해버리면 어쩌지', 기나긴 걱정과 걱정의 꼬리들이 비로소 끊어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으나, 늘 내 터전이 아닌 곳이라는 생각 속에, '이방인'으로서 끊임없이 눈치 보며 걱정을 안고 살다 보니 자연스레 따라붙는 습관들이었다. 이제 되었다. 아기는 건강히 잘 있고, 내 상태도 양호하였으며 (입덧만 빼고), 가장 큰 문제의 해결책, 입덧 약도 처방받아왔으니.
가장 궁금할 법한 첫 방문 진료비? 나중에 청구된 사항들을 꼼꼼히 살펴보니 9월 13일 첫 방문에만 청구된 진료비는 순수 550달러. (1,200원 환율로 계산하자면, 약 66만 원)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내가 가입된 학교 보험 플랜 덕분에 실제 내가 내야 할 금액은 단돈 20달러 (2만 4천 원). 그래서 미국에서는 의료보험 없으면 폭탄을 맞는다고 하는 거로구나. 심지어 입덧 약 처방은 한 달 기준 724달러 (1,200원 환율 기준으로 86만 8천 원)였다. 한국에서도 싸지는 않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 않을까. 약 30알에 90만 원 가까운 돈이라니! 차라리 그냥 입덧을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저 금액의 약을 먹다가 더 토할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면서. 다행히 처방받은 약도 보험 커버 덕분에 내가 실제 부담해야 할 금액은 50달러 (6만 원).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납득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의료보험 없이 아기 낳다가는 파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비행기 1등석 타고 한국 가서 출산하는 게 낫겠다며. (실제 이 뒤로 이어지는 산부인과 진료비는 더 상상을 초월한 것들이었으니, 그 금액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보험 플랜마다 Co-Pay, Deductible, 각종 요소요소가 다르고 너무 헷갈려서 미국에 와서도 몇 번이고 관련된 영어강의를 들었는데 여전히 이해 안 가는 것투성이. 아무리 미국 생활을 오래 이어간다고 해도, 의료보험에 관한 세부사항은 끝까지 혼돈의 영역에 남게 될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진료받은 항목에 대해 커버되는 것들이 많을수록 좋다는 거고, 아무리 특수 진료받은 항목들이 많더라도 보험이라는 안전 둘레 안에 있으면 최대 어느 이상 나에게 청구되지는 않는다는 정해둔 '선'이 있다는 것. 한국에서처럼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오늘의 진료비를 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청구서가 날아오길 기다려야 해서 혹시나 '의료비 폭탄을 맞는 것은 아닐지' 은근히 바들바들 떨기도 했으나 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유학생인 나는 학교 보험에 가입돼 있던 덕분에 550달러 내야 하는 항목을 20달러만 내도 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포인트. 한국에서도 보험 잘알못이었으나 미국에서 그 힘을 깨닫고 감탄하는 중.
한국 날짜 추석맞이, 우리 부부의 큰 일정, 첫 OB/GYN 방문을 마치고 먼길을 돌아 보스턴의 작은 한인타운, Allston을 찾았다. 여전히 입덧 때문에 입맛은 없었는데 그래도 첫 진료 여파로 은근히 속이 허했던지, 허겁지겁 뚝배기 불고기를 드링킹 했음은 안 비밀이다. 남편은 설렁탕 한 그릇, 파송송 깍두기 비벼 뚝딱. 유난히 하늘 높게 느껴진 보스턴의 가을날, 한 끼 배불리 먹은 부부는 손을 잡고 작은 한인타운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며 9주 차의 작은 젤리곰 아기를 둥둥 떠올렸다. 기특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다행이야. 입덧만 좀 덜 심해져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