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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Nov 01. 2019

유학생 예비맘, 나무늘보로 살아가기

미국 산부인과 체험기 (4)  

새벽 5시부터 일어나 굳이 도서관 일등 출석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아나운서로 일할 땐, 낮 라디오와 밤 메인뉴스 진행이 주 업무였으므로 오후 출근 라이프를 이어왔다. 일반 직장인들의 평균 업무시간에 비해 다소 특이하게 짜인 스케줄 덕분에 출근 전 도서관 스터디, 퇴근 후 도서관 스터디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열기 10분전 도착. 아침7시 땡하면 곧장 들어가서 오늘의 공부자리를 찜했던 시절. 아나운서 라이프 속 공부모드


이른 아침  뜨는  보며 춘천 청소년 시립도서관의 최고 명당자리를 찜한  영어 리스닝으로 하루를 열어야 몸도 마음도 평안했고  마디라도 중얼거리면서 출근을 해야 흡족했다. 메인뉴스 생방송 진행이 끝난 ,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방송국  도서관으로 향해야만 비로소 '내가  살고 있구나', 온갖 유혹거리를  견디고 '자기 계발 잘하고 있구나', '안주하지 않고 있구나' 생각할  있었다. 안정된 정규직 자리에서 제법 흡족하게 일하고 있으면서도 주어진 임무만 적당히 해결하면 사는 삶은 싫었다. 이제야 이따금씩 생각한다. ‘ 안주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땐 적당히 견디며 그럭저럭 자리를 유지하면 나도 그대로일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렇게 매일 달려야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출근 전, 일등으로 출석하고 밤뉴스 생방송 마치고 또 가서 직원 눈치보며 꼴등으로 나오기. 그 희열감은 해본 자만 알지
주말엔 카페 일등 출석. 카페 구석자리에서 스터디모드


퇴사 , 미국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없었다. 아나운서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 입학을 위해 토플 (TOEFL) 지알이 (GRE) 시험에 미친 듯이 목숨을 걸고 매달렸지만 그게 끝일 리가 없었으니까. 국내파 시험용 영어에만 길들여진 내가 싫어서, 한국에서와 똑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보스턴 근교 도서관으로 향하거나 수업이 있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을 서서  강의실을 혼자 독차지하고 공부해보겠다고 바지런을 떨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사람 성향은   바뀌는 거였다.

미국에 와서도 강의실 일등출석. 그 습관은 버릴 수가 없더라


임신이라는 변수가 '이러이러했던 '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찬찬히 서서히 바뀐  아니라 완전히 갑작스레 싸그리 몽땅, 아주 파격적으로. 급진적이라는 뜻을 내포한 모든 부사를  동원해서 표현해도  정도로 정말이지 나를  바꿔버렸다. 한마디로 나는 '나무늘보' 되었다.


1 1초도 허투루 쓰는  다며 라디오 생방송을 하며 노래가 흘러나가는 틈새시간 잠이라도, 모르는 단어   개라도 반드시 외우고야 말겠다고 오기를 부렸었다. (곁에 계신 파트너 선배님 죄송했어요) 이랬던 내가 1시간이고 10시간이고 늘어질 대로 늘어져버린 삶을 이어가게 되다니. 말. 도. 안. 돼. 몸속의   없는 호르몬 영향이  바이오리듬과 내재적인 성향을 일시적으로 바꿔버린 건지, 아니면  기회다 싶어서 그동안 잠재적으로 억눌러왔던 게으름 본능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키게  건지, 어떤 영향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다. 분명한   굉장히 있는 힘껏 '느려졌다' 거였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있는 만큼, 제대로 게을러져 버렸다.

늘 빠릿하게 사는 데 익숙했던 나. 부지런히 몸을 돌려야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어쩐담.
마음같아선 보스턴도서관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집중하고 싶지만.


분명한 
 있는 힘껏 ‘느려졌다 거였다


애초에 조금이라도 나를 '놓아둘 줄 아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렇게나 어색하진 않았을 텐데. 탄탄하던 테이프 라인이 뜨거운 열에 녹아버리고 닳을 대로 닳아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때론 바보가 된 느낌이었고, 게으를 수밖에 없어진 나 스스로에  짜증도 났다. ‘도대체 이게 뭔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내 몸 상태에. 기상 시간도 한참 늦어졌다. 새벽 5시, 아니 심할 땐 4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하고, 아침 7시부터 보스턴 커먼 공원을 가로질러 공부하러 가던 내가 9시가 되도록 침대에 딱 붙어서 자고 있는 모양새라니. 세상에. 남편이 아침운동을 한 바탕하고 오도록 나는 침대에 나무처럼 누워서 움직이기 싫어하고 있었더랬다.


아아, 이런 나무늘보 녀석아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겨우겨우 숙제만 해도 다행


낮잠? 34년을 살도록 남들이 쓰는 단어인  았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엔 집에서 밀린 과제를 하다가 소파에 기대 편안히  붙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으니! 하루 안에 해야  일들, 일주일 안에 해결해야  공부 거리들 빼곡히 어가던 다이어리는 하루가 멀게 ,  비어 가고 있었다. 종종 병원 가는 , 숙제 내는 마감  정도만 꾸역꾸역 써나갔을 이었다.  성취지향적인 삶에 매료되고 중독되어있던 나는 임신 주차를     더해갈수록 '최소한의 ' 살아가는  익숙해지고 있었다.


대학원 가을학기 개강! 실로 입덧 최악기. 집에가고만 싶던 날들


최소한의 삶이라는 . 가을학기 개강과 동시에 제대로 실천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격 개강  오리엔테이션 때부터다. 나는 ‘진짜  해야  것들만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눈치를 보며 살살 몸을 사렸. 우리  어드바이저 교수와 만찬 미팅 자리에 가서 눈도장이라도 찍고 반짝반짝 ' 한국에서  이런이런 가능성 많은 학생입니다' 호기심을 드러냈어야 하는데 입덧이 극에 달했던 시기, 저녁 만찬까지 도저히 버틸 여력이 없어서 깔끔하게 포기.


이런저런 전공 팁을 공유하는 자리도 필수 참석이 아닌 자리면 최대한 빠지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기들이랑 소셜라이징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수업 전후로 스터디하는 동료 애들을 뒤로하고 나는 깔끔하게 수업만 참석하고 무조건 끝나자마자 칼같이 집으로 퇴근하는 학생이 되었다.


엘리야, 커피 마시러 가지 않을래?”라는 상냥한 제안을 시크하게 노노 해야 하는 날들의 연속. (커피도 싫어. 수다도 귀찮아. 넘나 피곤해.  그냥 교실에서 쉴게.) 유부녀 학생은 어쩔  없지,  너희와 다른  중요한 숙제를 안고 단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되뇌어봐도,  평균치 이상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해왔던 나였기에 모든  낯설었다. 스스로 자처한 '평균치' 삶이 과연 진짜 괜찮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찝찝해했다.


소셜라이징이고 뭐고 말한마디 할 기력도 없어서 모든 OT가 지옥 같았던 가을. 화려하게 마련된 저녁만찬은 입덧자에겐 그저 공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하지 않았다. 나무늘보의 삶이란. 17주차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엔 살살 적응할 만도 한데 본격적인 SECOND TRIMESTER_임신 중기에 접어들어도 나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하루하루가 때때로 맘에  들었다. 그렇다고 빠릿빠릿한 예전의 삶으로 바꾸지도 못할 거면서 괜한 조바심이났던 것. 못해도 아침 8시까지는 잠을 자줘야 하고, 학교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마저 눈을 붙여줘야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통근기차 안에서  영어방송만 듣고 영어 표현 외우기에 혈안이 돼있던 나는 도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


학교 도서관에선 최대한 편안한 소파를 확보한 뒤, 틈틈이 배고프지 않게 간식을 냠냠 거리는 게 우선이며, 1분 1초라도 최대한 빨리 집에 갈 수 있게 칼같이 일등으로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 어가고 있었다. 개강과 동시에 만난 우리  동기들은 나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교성 제법 없는' 애로 생각할  분명해보였다.


눈빛은 제법 독해 보였는데 

은근히 적당히 하네?
편안하게 가네?


숙제도 누워서. 시험공부도 누워서. 침대에서 눕눕하는 일상. 예전같았으면 새벽부터 짐 한가득싸들고 도서관 갔을텐데. 억울해


마감일만 적당히 지키,  이상 무리해서 하지 말기.  정해진 선까지만 하는 평균치 학생 되기.


' 거기까지만 하는' , 최대한 평균치의 삶을 유지하는 삶을 아냈다. 임신 초중반, 몸도 마음도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막달까지   있는  요렇게 버텨보자고 다짐다짐. ‘평균까지만 적당히 사는 것도 어디야?’ 위안해 보면서 말이다. 불안불안 하지만 이래저래 반토막 정도의 시간을 '적당히' 하며 견뎌봤으니 나머지도 비슷한 호흡으로 견뎌 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실은 선택의 여지도 없으면서. 다르게 마음먹어  기력도 없으면서. 그럴듯한 의지를 품어보는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한다.


시간은 어찌 됐든 흐를 거고, 빠릿빠릿하게 바지런한 삶을 추구하지 않아도 세상  일이 나진 않을 거다. 나무늘보가 되었다  지라도 겨우겨우  시간을 타고 가겠지. 다만  가지 궁금한 , 40주의 모든 시간이 흐른  이후... 과연 나는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것인지여부.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최대한 나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삶을 다시금 지향하게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호흡에 길들여져 서서히 무리하지 않고 사는, 적당한 호흡에 안착하게  것인가.


편안한 의자만 찾아다니는 하루하루. 나 이래도 되는 거야?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내가 30 넘게 지켜온 리듬을 한순간에 이렇게 ‘정반대로바꿔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잠깐의 신비한 경험,  해봤던 호흡을 ‘일시적으로경험해볼 기회를 주는 것일까. 나는 벌써 출산 예정일,  이후의 삶이 궁금하다.


 안달복달, 전전긍긍 걷던 
빠른 속도감을 되찾게  것인지


나무늘보의 호흡을 
진심 다해 사랑하게  것인지


방송을 하던 시절애는 잠깐 스탠바이 시간도 아까워서 틈틈이 영어단어를 외우곤 했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출산 후에도 나무늘보처럼 살아가게 될까. 다시 빨갛게 타오르던 생기있는 일상을 되찾게 될까.
“남편, 나 나무늘보처럼 살아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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