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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Nov 27. 2019

예비맘, 너무 서둘러서 문제야

내게 가장 특별했던 280일 (2)

내게 가장 특별했던 280일 (1)

미국 산부인과에 방문하는 것도  달째 되던 지점.  병원 방문할 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간다 싶었는데, 입덧이 희미해질 무렵부터는 시간이 꽤나 빠르게 흘러가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  반갑다. 초기부터 체력 저하로 고생 고생하다 보니,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던 나로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Second trimester, 임신 중기에 본격 접어들고  뒤로 제법 이런저런 진료 시스템에 익숙해진 덕분일지, 병원 가는 일상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불안함은 사라졌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방문 때는 담당의는 만났을지언정 정작 아기 초음파를 보지 못하고 오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초음파    6주가량이 넘었다. 궁금해질 만도 하다.  있는 거겠지?


18주에서 19주로 넘어가던 지점, 마냥 너의 안부가 궁금해서


그냥 빨리 가자,
빨리  만큼 빨리 끝날거야


오늘 예약 시간은 11 30. 일찍부터 눈이 떠진 나는 이른 아침부터 병원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대학원 수업이 없는 금요일에 항상 산부인과 예약을 잡아둔다. 전날 목요일  수업이 한밤중에 끝나기도 하고, 한주의 피로감도 훌훌 털어낼  실컷 늦잠도  자고 여유 있게 출발하려고 남편이 사려 깊게 정오쯤 해서 잡아둔 예약이었을 텐데  알면서도 괜히 '서둘기' 시작한다.  특기다. 일찍 준비도 시작했겠다, 괜한 오기를 부려본다. 일찍 가서  좋으면 일찍 진료 마치고 점심시간 되기 전에  후다닥 끝날  있잖아! 미국의 흔한 예약 문화를 알면서도 그런다. 예약시간에 맞춰서 칼같이   시간에나 들어갈  있을텐데 말이지. 오랜만에  아기 초음파에 일찍이도 들떴던 모양.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빨리 가보자

서둘러. 서둘러. 헛둘헛둘!


너희 부부도 알겠지만 
너무 일찍 오긴 했어



11시 30분 예약인데, 대로도 뻥뻥 뚫려서 결국 10시 30분 도착. 병원에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남편은 어차피 그럴 걸 알았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대기실에 앉았고, '빨리 가자'고 재촉한 나만 괜히 머쓱해졌다. 본격 진료 전 마쳐야 하는 기초검사 (소변검사와 체중검사는 방문 때마다 해야 한다)는 미리 마칠 수 있었으나 '진짜' 초음파 검사는 본 예약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아니, 혹시라도 늦게 오는 사람이 있거나 예약 취소자가 있으면 우리부터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빨리 오자고 한 건데..." 빨리 가자고 서둔 장본인이라서 괜히 혼자 찔린 탓에 중얼중얼. 워낙에 서둘기 좋아하는 내 특기를 연애시절부터 진작에 알아 온 남편은 전혀 불만이 없다. 뾰로통한 표정 하나 없이 잘 '대기'하는 남편. 늘 '안 서둘러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난 늘 서둘고 있다. 아기를 만나기 전부터, 벌써부터.


“우리가 병원에 너무 일찍 오기는 했어”


늦게 가서 급히
서두는 거보단 낫잖아



나의 '서둘기' 특기는 임신 , 결혼 전부터 틈틈이 발현돼왔다. 이를 테면 영화 보러 극장에 가도 정해진 시간보다  시간은 일찍 가서 대기를 해야 안심이 된다는 , 지하철에서 내리기  정거장 전쯤부터 서서 대기를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는 . 최고의 '서둘기'  남편과 연애시절, 올랜도에서 데이트를   나타났더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 올랜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행으로 경유를 하는 일정이었는데, 샌프란에서 뜨는 한국행 비행기가 정오쯔음인데도 '서두는 습관' 절정에 달했던 나는 이런저런 시차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연착과 돌발상황에 대비해 올랜도에서 꼭두새벽부터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졸랐다.


평소 내가 결정하는 바에 대해 전혀 '토를 달지 않는' 남편은 당시에도  선택을 존중하며  한숨  자고 공항에 데려다주었었다. 다시 이야기해보니 '공항에서 대기하느라 엄청 고생했을  알았다'. 남편 말이 100% 맞았다. 사실 너무 서둔 탓에 공항에서 거의 네댓 시간은 대기를 해야 했고, 어떤 변수도 어떤 돌발상황도 없었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너무 서둘고 있는 것이다. 괜한 볼멘소리로 되뇌어 본다. “늦게 가서 서두는 것보단 낫잖아.”


느긋하게 총총거리지 않는, 서둘지 않는 삶, 내게도 가능할까


일찍 온 덕분에
너희들 초음파 사진
더 많이 찍어갈 수 있겠네


대기 대기하다가 살짝 지친 우리를 방긋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오늘의 스태프! 결국 우리는 11시 20분쯤에나 초음파 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가, 정말이지 초음파 사진을 꼼꼼하게 많이 찍어주기는 했다. (물론 정시에 와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초음파 속 아기는 정말이지 액티브했다. 잠깐이라도 잠자코 있지 못하고 매번 성급하게 서두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나를 보는 것처럼, 춤추듯 움직였다. '엄마, 나도 급해 아직 19주밖에 안되었단 말이야? 빨리 나갈래.'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짐짓 생각했다. 서두는 성격마저 닮았으려나. 느긋하게 여유 부리지 못하는 성향이 나와 판박이려나.


영화관에 갈 때도 한 시간은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라서. 미국 영화관은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은 더 늦게 시작한단 말이지!


핸드폰 배터리가 절반도  남았음에도 '거의  닳았다'라고 충전을 서두는 사람. 정해진 약속이 오후 무렵이어도 새벽녘부터 왠지 모르게 꼿꼿해져서는 긴장 타는 사람. 느긋함이라고는 잊고 사는 ,  '둘기’ 익숙해진  모습. 임신이 일상의 많은 풍경을 바꿔두었지만, '서두는 습관'만큼은 산부인과에서마저도 이렇게나 여전하다. 이러다가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병원에 미리  있어야 한다고, 불안하다고 서둘고 있을지는 않을지. 그리고  모든 나의 성향들이 탯줄을 타고 시시각각 전달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늘 이런 모습인 걸까. 뭐가 저리 급한지, 집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서둘고 있는 내 모습. 남편의 순간포착!


서둘러서 좋은 것과 느긋해도 되는 것에 대해 현명하게 구분하는 지혜를 천천히 쌓아갈 수 있기를. 아무리 서둘러도 정해진 '예약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있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40주를 꼭 채워야 하는 과업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무조건 '서두는' 게 답이 아님을 알아가기를. 나 혼자 서둔다고 맘처럼 되는 일이 많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더더욱이 그렇게 될 거야. 아아, 나는 여전히 서툴게 서둘고 있는 예비맘이다.


느긋하게 앉아 마차라떼를 홀짝일 수 있는 여유 찾기. 서둘지 않는 엄마가 되는 연습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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