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의 시대를, 사는 법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시계는 이전 시대의 그것보다, 몇 배쯤은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적어도 두 배 그 이상쯤은.
뭐든지 빨라지는 시대.
빨라질 뿐 아니라, 이 '빠름'이 가치이자 미덕이 된 시대.
질문 하나에 전 세계 데이터가 빠르게 결합해 답을 눈앞에 보여준다. 클릭 한 번이면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을 단숨에 만난다.
화면 속 영상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며, 30초도 채 되지 않아 찾아오는 지루함에 빠른 스크롤 질을 부추긴다.
짧은 시간 안에 나오는 성과는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때로는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저 빠른 성과에, 영웅이 된다.
대체로 느린 것이나 기다려야 하는 건, 매력적이지 않은 시대임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이런 세상의 수혜자이면서도, 조금은 어지러움을 느낀다. 꽤 자주.
삶은 분명 이전보다 훨씬 더, 이전을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편리해졌다.
전무후무한 이 '빠름'을 일상으로 누리는 나 역시, 이 시대만이 누리게 된 특권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빠른 세상 속에 산다는 것은, 쾌(快)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에 쏙 들어맞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삶]이라는 것에 이 '빠름'을 가지고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삶에는 '빠름'만 가지고 평가하거나, 완성시킬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삶을 이루는, 그리고 나를 이루는 요소요소들은 오히려 '빠름' 과는 반대인 것들에 의해 숙성되고 여무는 것들이 많다.
사람 사이의 신뢰,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한 사람으로서의 성숙함, 나의 내면에 귀 기울임, 오랜 상처의 아묾,..
'진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느린 속도를 요한다. 오래도록 공을 들이며 익히는 시간을.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 '여무는 시간'에 대해 그리 관대한 것 같지는 않다.
오랜 시간 농익어야 할 것들은 자칫 외부의 '빠른 것들'에 빠져 있느라 외면당하거나. 혹은, '빠름'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삶에서 진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들에 이마저도 빠름의 잣대를 들이대고는 하는 것이다.
빠른 결과, 빠른 성과, 빠른 성취, 빠른 관계,..
여하튼 빠르게 쌓인 것들은 매혹적이고, 칭송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쯤에서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장인 정신'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정신]
그러고 보면 장인 정신이란,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라기보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흙이 스스로 숨 쉬며 마르는 시간을 기다리는 도예가.
나무의 결을 따라가며 깎아내는 데에 수년을 바치는 목공.
칼날을 수백 번 달구고 식히는 도공.
어쩌면 장인의 세계에서 서두름이란 금기이며, 마치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가듯 시간을 기우는 기다림은 곧 '기술'의 일부가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이것이야말로, 빠름을 촉구하는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기술이라 믿는다.
'한 땀 한 땀 기우는 시간'의 누적.
결코 빠르게 쌓을 수 없는, 느리나 결코 무기력하지 않은, 능동적으로 한 올 한 올을 기워가는 시간.
13년 동안 해온 일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접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돌고 돌아, 글 앞에 서있다. 오래 품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아온.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기에 이루어가는 과정 또한 '빠름'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다.
글이라는 것에는 그 흔한 요행을 바랄 수도 없지마는 나는 더더욱이 이 일에 '장인 정신'을 담아보려 한다.
빠르게 올라가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성급히 이루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조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술수를 쓰거나 거짓을 담지 않으며.
혹여 느린 걸음인 듯 보이는 나의 발디딤들에 의심을 품지 아니하고, 앞서 나가는 이를 보며 불안함에 떨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나의 시간을 기우는 것에, 오로지 나의 시선과 마음을 쏟아내리라.
조급해지는 마음이 찾아올 때면 한 호흡 다시, 깊게 마시고 내쉬며.
나의 빛이 뚫고 나오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걷고, 걷고 또 걸으리라.
그저 묵묵히 나의 자리에서, 나의 칼날을 빛나게 갈아 내리라.
수 백, 수 천, 수만 번 글의 결을 깎아내며 마침내 나의 문장들을 엮어내리라.
송곳의 뾰족함이 감추려 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빛이 새어 나올 때까지.
가장 강한 전사는 시간과 인내다
The strongest of all warriors are these two - Time and Patience
- 레프 톨스토이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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