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명사 자리에 들어간 [한편으로]가 '같은 편' 이거나 ' 어느 하나의 편 또는 방향'을 의미한다면, 부사가 된 그것은 '어떤 일에 대하여, 앞에서 말한 측면과 다른 측면을 말할 때 쓰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갔던 이야기의 흐름을 돌리는, 어느 정도의 반전을 내포하고 있는 부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편으로'는 대개 긍정을 부정으로, 또는 부정을 긍정으로, 어떠한 거부감도 밀어 넣지 않고 아주 스무스하면서 묘한 흐름 전환을 만드는 데에 쓰인다.
앞의 것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끌어안으면서도, 태세를 완벽히 전환시키는 온순한 반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부사.
[한편으로]는 양면성을 지닌 삶을 그야말로 찰떡같이 표현해 주는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 역시, 이 '한편으로'가 들락날락 거리며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또 때로는 고통 속에서 환희를, 행복 속에서 아픔을 동시에 넘나들며 흘러왔다.
순전히 어둠이기만 한, 순전히 빛이기만 한 그런 순간이, 우리 삶에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적어도 내 삶엔 그런 건 없었다.
찢겨져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희미하게 비쳐오는 빛이 있었고, 이대로 영원해도 좋겠다가 연신 절로 나오는 순간에도 돌덩이 같은 어두운 짐이 마음 한 켠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삶은 이렇듯 양면적이고도 입체적이기에.
'한편으로'라는 부사는 이러한 나의, 또한 우리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생겨나야 했으리라.
그리고,
지금 내가 마주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한편으로'가 간절했던 책은 처음이다.
이토록 나의 아픈 쓴뿌리를 타고 들어가게 하는 책이 있었을까.
첫 장을 편 이후로 열었다 닫았다를 연거푸 반복했던 책. 턱턱 숨이 막히고 울음이 차올라도 '한편으로', 부사를 타고 올라오는 위안의 목소리에 다시 다음 장을 펼치게 한 책.
소위 작가님의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검은 밤의 오랜 날들.
더는 컴컴해질 수도 없는 이불속 어둠으로 숨어 들어가 울음을 삼키고 삼키다 지쳐 잠들었던, 작고 작은 아이를 찾기 위해.
앞으로의 글들은 그 아이에게.
그렇게도 안아주고 싶었던 작은 아이에게, 바치는 글이라며 시작했던 나의 글 여정은, 기억으로 가는 길의 중간 즈음에서 멈춰지게 되었다.
과거를 이해해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나의 글은 시작되었으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몽유병에 걸린 듯 그 기억의 정체는 희미했다.
다만 그 시절의 어두웠던 감정들만 현재의 나에게 속속들이 스며들었기에 나는 그대로,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님의 책을 펼친다는 것은 중단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걸음을 다시 재촉하는 일이었다. 덮어놓고 외면하고 있었던 괴로운 무언가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
너무나 닮아있는 과거, 그리고 현재.
제발.
언젠가.
억지로.
차마.
어쩌면.
.
.
.
사실은 담담하지 않았을, 덤덤히 받아들이기엔 버거웠을 그 삶은 부사를 입고 너무도 담담히 고백되고 있었다.
아직 담담할 수 없는, 그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오게 될, 그 덤덤할 고백처럼.
그래서였을까.
어떠한 구간에서는 종이 한 장에 박힌, 고작 글자일 뿐인 한 자 한 자가 그러나 가슴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닥치는 대로 내 마음을 휘갈기고는 하는 것이었다.
온몸을 따라 번져오는 통증처럼 생생하게.
멈춰볼까도 생각했으나,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떠오르는 것이었다. 급진적이지도 않고 극단적이지도 않게,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부드러운 전환을 만들어 주면서.
그러나 '한편으로'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책을 만났다는 것은. 작가님을 만났다는 것은.
부사에 담긴 우리의 삶은,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으며 그 모양은 각각 다를지언정 어둠과 빛의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는 모두 닮아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던가.
고통은 단지, 나의 것만이 아닌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며. 이 삶은 함께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얼마나 큰,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
첫 장을 열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간절하게 '한편으로'를 찾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 위안의 '한편으로'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부사가 없는 삶이 없는, 나와 닮은 작가님의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부사에 이토록 다채롭게도 삶을 담을 수 있다는 것.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가 부사 하나에 모두 담길 수 있다는 것.
부사로 풀어내는 삶은, 그토록 바라는 '한편으로'를 불러낸다는 것.
이 모두를 책 한 권으로 알려준, 소위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책을 읽는 여정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멈추어 서려고 할 때마다 '같이 가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작가님의 주옥같은 문장들 덕분에, 끝까지 [부사]가 만들어주는 '한편으로'의 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쓰는 삶을 살아간다.
쓰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님처럼, 쏟아낼 방법을 '도무지' 알지 못해 시작한 쓰기의 삶을, 나는 오늘도 이어간다.
여전히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등에 지고, 그렇기에 '한편으로' '이토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삶을.
언젠가 또다시, 삶이 버거워질 때면 이 책을 자연스레 펼치게 될 것 같다. 그 순간을 살아내게 해 줄 작가님의, 동시에 나의 부사를 찾기 위해.
한편으로 가 명사로 쓰이면 '같은 편'이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어둠의 순간에 마주하는 얼마나 다행인 사실인지!
너무나 닮아있어,
너무나 아팠던 문장들.
그래서 한편으로 너무나 다행이었던 책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의 저자 소위 작가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