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기술
'보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가?
나는 그다지.
내 것으로 갖고 싶지 않은 것에 포함되었던 단어다.
이도 저도 아닌 삶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그 이상]을 원하지, [보통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란 어쩐지 무력하고 게으른 느낌을 준다.
보통은 그래서, 내 맘에 썩 드는 단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보통' 역시 긍정과 부정의 뉘앙스 그 얼마쯤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보통을 사용하는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 긍정도 아닌, 부정도 아닌 중립의 상태. 어쩌면 긍정인지도, 부정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대개 특별히 않고, 흔한 것에 '보통'이라는 말을 붙이게 되는데 대상에 대해 딱히 생각할 거리도, 이유도 없을 때 가장 편하게 끌고 올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오늘 하루 어때?"
"뭐, 보통이야"
"오늘 기분 어땠어?"
"뭐, 그냥저냥 보통"
"오늘 시험 잘 본 것 같아?"
"응, 뭐 보통으로"
"맛있었어?"
"그럭저럭, 보통"
뭐, 그럭저럭, 웬만큼 등과 같이 쓰이는 '보통'에는 약간의 무관심이 포함되어 있다.
딱히 마음을 쓰지 않고 무심하게 흘려버린 것에 딱히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했을 때, 가장 적절하게 가져올 수 있는 단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해서, 이내 곧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는 순간을 표현하기도 하는 단어.
이것이 바로 '보통'이다.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그런 흔한 류의 것들에 마음이 쏠리지 않는 건, 사실 우리 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보통인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것도, '보통의 삶'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본능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효율성을 따지는 뇌는, 보통의 수준이 되어버린 익숙한 것을 '자동'의 영역으로 넘겨 버린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을 모두 다 살피고 처리하는 것이란 뇌의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뇌는 살기 위해,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이기심을 발휘하는 존재이므로.
늘 반복되고 새로울 것 없는 자극을 무의식 장소로 옮겨버리고는 그것을 의식하지도, 감각하지도 않도록 하는 것이 뇌의 역할인 것.
집 앞의 길은 너무도 익숙해서 굳이 애써 길을 찾지 않아도 발걸음이 절로 집으로 향한다.
뒤뚱거리며 좌우 균형 잡느라 분주했던 자전거 위의 발도, 어느 순간 두 손을 놓을 정도로 익숙한 페달질을 하고 있다.
숨은 언제 들어가고 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고, 심장이 뛰는 일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것들은 너무 당연해져서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지 않은가.
뇌는 이런 일들을 반복한다. 감각과 의식 영역에 있던 것들조차도 빠르게, 무의식으로 밀어 넣는 일들을.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또다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사람이란, 태어나서부터 그렇게도 '보통'의 것들을 거부하는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이 되어버릴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보통이 되어 잊히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항상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를 하고, '특별한' 것에 열광하는.
이쯤 되니 내가 생각하기에 '보통'은, 익숙한 것을 더욱 무심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단어로써, 오직 희소한 것에 열광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품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이야"
그래서 더 특별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더 노력해야 되겠어.
그래서 더 찾아가야 하겠어.
보통의 안에는 '약간의 불만족'과 그렇기에 그 뒤에는 '무언의 열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삶에서, 이 '보통'이 가져다주는 안정과 함께 너무도 익숙해서 잊혀질 법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해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삶을 이루는 것들은 이 '보통'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보통'에 닿지조차 못한 것도 많기 때문이다.
보통의 날들.
보통의 기분.
보통의 맛.
보통의 수준.
사실은, 이것들을 유지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리고 생각해 보면 보통의 날, 보통의 기분, 보통의 맛, 보통의 수준이 정말로 [보통]으로 낙인 시켜버릴 수 있을만한 것들이었을까.
사실 애초에 그것들을 ‘보통’이라 이름 붙인 건, 나 자신이 아니었는지.
"엄마! 너무 행복해!"
딸아이는 정말 너무나 평범해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의 순간에조차도, 늘 나에게 행복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은 너무 맛있어!"
어제와 똑같은 반찬을 내놓아도, 아이는 늘 엄마 음식은 최고로 맛있다를 연발한다.
"엄마! 오늘은 진짜 특별한 날이야!"
놀이터에 신나게 놀고 온 다음이면, 그리 기쁠 것도 없는 날이 아이에게는 '진짜 특별한 날'이 되고는 한다.
늘 주변에 펼쳐져 있는 [보통]의 것을 외면하지 않고 의식 위로 꺼내어주면, 그렇게 좇아 헤매는 [특별함]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힘은 [드문드문 찾아오는 특별함]뿐 아니라, 무던히 이어지는 [보통]들 속에 있다. 그저 그것을 '보통'의 것이 아닌, '특별함'의 의미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보통의 날들에, 보통의 순간에, 보통의 맛에, 보통의 수준에 이름을 붙여보자.
행복도 좋고, 근사함도 좋고, 따뜻함도 좋고, 최고도 좋고, 그 무엇이라도 좋고.
아무 색깔과 향이 없었던 무색 무향의 것들이, 행복을 입고. 근사함을 입고. 따뜻함을 입고. 최고를 입고는 나의 일상을 환히 밝혀주는, 향기 나게 해주는 빛과 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보통]이라는 건, [빛나는 가치]를 품은 단어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평생을 품고 지녀야 할, 보통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기술이자 신비이리라.
보통의 날들도, 빛날 수 있다.
보통의 나도, 빛날 수 있다.
보통의 찰나를, 찬란한 순간으로 명명할 수 있는 마음만, 우리에게 있다면.
오늘 나는, 어떤 보통의 모습으로
보통의 날을 살 것인가.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댓글과 구독 응원은,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