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상태에 대한, 갈망에 대하여

by 하날빛


확실히,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톱이 되어

한 발자국도 나서지를 못 하게 된다.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힘을 빼보면,

날카로운 발톱은

으스스 힘없이 떨어진다.


'허술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의 빗자루로 훌훌

발톱을 털어내고


얼른, 길을 나서자.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10월이 되고 며칠, 글을 쓰지 못했다.


꺼내어 낼 것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들어가야 할 곳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한 채 주변만 배회하듯이, 다른 작가들의 책 주위만 빙빙 돌며 전전하는 날들이었다.



그 속에 들어가면 저자들이 내 사유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유영하다 보면 문득 낚아챌만한 글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였으나 내 손에 들린 글감이 갈고리에는 영 걸리는 것이 없던 것이다.


잘 짜인 문장들은 나의 마음을 안도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이렇듯 예술품과 같이 영롱한 글을 꾸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오고 있었고..


'오늘은 꼭 써야 하는데'


뭐라도 건져보겠다는 의도를 불순하다 생각한 것인지 뒤적거리는 책들은 그 어느 것도 내어주지 않았다.

혹은 내 머리가, 내 마음이 꽉 막혀 책이 던져주는 재료들을 받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어떤 이유에서건 결론은, 나는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 글을 쓰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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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정신을 맑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등 뒤에서 내 옷자락을 거머쥐고는 한 글자로도 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한 것의 정체에 대해. 나의 3일을 앗아간 거대한 그림자에 대해.

그것의 정체는 '완벽'에 대한 욕심이었다.


'잘 해내야 한다', '흠 없이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


무결함에 관한 욕심은 마치 수풀 속에 숨어있는 사자와 같이 늘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온통 잡아채고는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의욕과 의지, 용기 있는 행동들을 가차 없이 할퀴어대는 '완벽'이라는 굵직한 발톱을 드러낸 채.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때.

끝맺음을 해야 하는 때.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때.


깔끔하게 매만져진 결과물을 손에 쥐어야 한다는 완벽주의의 '무결 사냥'은 이렇듯 언제고 시작된다.


나에겐 내 애정이 가장 깃드는 '글'이 늘 그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 나흘 전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부터 그 거대한 발톱에 영락없이 걸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생각이 날 리 만무했을 터.


삼일 내내 바동거리며 한 궁리라고는 '어떻게 잘 써진 글을 쓰지' 였으니, 날카로운 발톱은 점점 더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글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켜 놓을 수밖에.


3일 내내 나는 그렇게, 완벽히 얼어붙어 있었다. '완벽주의'라는 날카로운 발톱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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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빛이 등 뒤에서 비치어 오는 아침.

잔뜩 무거워진 마음을 얹은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불현듯 어떤 울림이 뇌리를 관통하며 지나간다.


'뭐, 좀 잘못되면 어때'

'안 읽히면 또 어때'

'어색하고 서툰 글이라고 외면당하면 또 어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들이 메아리가 되어 가슴 끝까지 파고든다.

'뭐 어때'


신기하리만치 어깨가 툭, 내려앉는다.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이 나를 짓누르던 굵직한 발톱이 힘없이 으스스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그래, 뭐 어떤가.

어차피 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고, 오늘의 글은 이것 하나로 끝이 나버리는 [완성]이 아닌 완성을 [향해]가는 길목에 있을 뿐인데.


하나의 글이 어제까지 쌓여왔고, 오늘 또 쌓이고, 내일 또 쌓이게 되면 언젠가 내 길이 되어있을 것을.


서툰 글 또한 그 길 위의 한 발자국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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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츠기라는 일본의 도자기 수리 기법에 대해 들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킨츠기.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고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하는 기술.


깨어져 금이 간 그 선은, 킨츠기로 인해 가장 빛나는 부분이 되며, 도자기는 그로 인해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마치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을 비롯해, 내가 하는 그 무엇이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러니 틈이 있어도, 깨어져도, 금이 가게 되어도 괜찮다. 불완전한 틈으로, 금빛 은빛은 반드시 스며들게 될 테니까.


완벽하지 않기에 스며드는 빛을 반드시 만나게 될 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를 펴고, 펜을 잡아 글자를 눌러 적기 시작한다.


좀 삐뚤한 글이어도 괜찮다.

좀 마음에 안 드는 글이어도 괜찮다.


뭐 어떤가.

이것 또한 나의 모습인 것을, 나의 마음인 것을, 나의 이야기인 것을.

나를 빛나게 해줄 나의 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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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완벽주의'라는 거대한 발톱 아래 갇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마다 나는 오늘을 떠올려 보려한다.


'뭐, 좀 잘못되면 어때'

'안 읽히면 또 어때'

'외면받으면 또 어때'


'곧 있으면 이 틈으로, 빛이 들어올 것을' 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면서.

으스스 힘없이 부서지는 발톱을 훌훌 털어내고는, 또다시 길을 걸어가리라.


불완전함에 대한, 깨어질 것에 대한, 틈이 벌어질 것에 대한 그 모든 두려움을 등에 지고서.


확실히,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톱이 되어

한 발자국도 나서지를 못 하게 된다.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힘을 빼보면,

날카로운 발톱은

으스스 힘없이 떨어진다.


'허술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의 빗자루로

훌훌 발톱을 털어내고.


얼른, 길을 나서자.


깨어지고, 갈라지며

금이 생기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들어올 빛을 기대하면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