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비가 오고 나니, 그 속에 청정한 풀향을 담아온 가을바람이 뺨에 스쳐옵니다.
말갛게 갓 씻은 얼굴을 드러낸 하늘을 올려다보니, 티 하나 없는 아기 얼굴처럼 뽀얗고 한없이 맑은 빛을 품었네요.
이제 막 만난 비개인 날은, 반갑기만 합니다. 다시는 흐린 세상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생각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햇발이 늘어지게 땅을 비추는 날이 며칠이고 이어지고 나면, 또다시 방울방울 땅을 적시던 빗줄기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을요.
축축한 비린내를 품고 세상의 모든 침묵 속에 추적거리는 소리만 들리게 할, 그 빗 날의 어두움을 그리워하리라는 것을요.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모양이든, 그 한쪽에 그리움이라는 게 그림자처럼 매달려 있는 것.
닿지 못할 어떠한 것에 대한 아련함.
사라져 가 버린 무언가에 대한 애틋함.
그 사무침을 잊지 못해, 달은 채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니었던가를 생각해 봅니다.
지나가버린 시간.
넘어가버린 계절.
스쳐간 모든 인연.
다시는 잡지 못할, 그 누군가의 손.
잡히지 않는 이 모든 그리움을, 그림자처럼 매단 채로 살아가는 것.
오늘은 또,
어떤 날의 그리움으로 남게 될까요.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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