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기까지의, 시간을 사는 법

by 하날빛


무르익는 시간을

묵묵하게.


그러나,

온전하게 쏟아붓길.


내가 마침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눈앞의 달콤함,

주변의 소란함에

흔들리지 않는다.


내 길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 걸음을

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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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이라 지칭하는 것들이 그 형태를 지니기까지는,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하다.


사과 열매가 열리기까지 5년

포도 열매가 맺히기까지 3년

대나무가 솟아오르기까지 5년

매미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7년

진주가 그 빛을 내기까지 3년


그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그 누가 이들을 사과, 포도, 대나무, 매미, 진주라 부를 수 있겠는가.


완성되지 않은 것에서, 그 가능성을 미리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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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남은 열매에서, 새빨간 사과가 열리리라고.

까만 꽃무리만 피어있을 뿐인 가시 같은 나무에, 송골송골 보랏빛 포도가 맺히리라고.

흙뿌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빈터에서, 꺾임 없이 꼿꼿한 대나무가 솟아오르리라고.

어떤 울음도 탄생할리 없는 축축한 땅에서, 그 존재를 힘 있게 알리는 매미가 탄생하리라고.

조개 안의 정체도 모를 작은 이물질이,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가 되리라고.


그렇게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 모양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존재가 되리라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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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언제쯤이면 따라갈 수 있을까, 따라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아무런 모양새가 없는 나의 모습은 때로 보잘것없는 작은 열매나, 검은 점들뿐인 가시나무, 비어있고 축축한 땅, 이물질이 파고든 껍데기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아무런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형태로서 존재하지 않는 시간.


그러나 형체는 없을지언정, 그렇다고 그 존재마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모두 부재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지나는 시간 안에는, 이미 존재의 씨앗이 들어있다.


온전한 실체가 되어가는 여묾의 시간이 필요할 뿐, 그래서 아직 보이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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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주변으로 향하는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본다.


내가 이를 곳, 내가 되어야 할 것을 떠올리면 여전히 묵묵히 채워야 할 것들, 무르 익혀야 할 것들이 보인다.

구석구석 비어있는 틈들을 메꾸며 열매로 익어가고, 땅 위로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빛의 층을 쌓아간다.


무르익는 시간을 묵묵하게.

그러나, 온전하게 쏟아붓길.


내가 마침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기에 눈앞의 달콤함, 주변의 소란함에 흔들리지 않는다.


내 길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 걸음을 걸을 뿐.


내가 어떠한 존재가 되리라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알고 있다.


믿음으로 걷는 길의 끝에 내가 어떠한 형태로 드러날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 꿋꿋함으로 나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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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