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환 Jan 12. 2019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목수J 작가K(5회)

어느날 우리는 일찍부터 막걸리집엘 들어갔다.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책을 읽어야 했지만

그날은 내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J를 불러냈다.


따끈따끈 잘 익은 꼬막찜

노릇노릇 계란향이 풍기는 파전,

시원달큼한 막걸리,

술안주도 술도, 내리는 비도 그럴 듯했다.


이렇게 그럴듯한 분위기에서는

그럴듯한 생각도 나온다.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난 내 고향 사투리로 말할 거야.

지금껏 20년 넘게 서울살이 하는 동안, 아무에게도 그렇게 해야겠단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형한테만은 그러고 싶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왜 그러고 싶지?”

“그게 나니까. 서울말을 쓰는 건 아무래도 내가 아닌 것 같았거든. 나도 알거든.”

“난 좋으네. 그래. 지금부터.”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부산 친구들을 만나거나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나오던 그것이

형 앞에서는 잘 되지 않았다.

이곳이 서울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 올라온 친구들하고도 사투리로 잘만 떠들었으니까.


“괜찮아. 급할 거 뭐 있어. 갑자기 되는 건 없는 거야.”

J가 말했다.


그로부터 2주 후

J를 다시 만났다.

내가 말했다.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응.”

“사투리로 말하는 거 말이야.”

J는 이미 다 아는 눈치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래보였다.


“사투리를 쓰는 나와 서울말을 쓰는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사투리를 쓰는 내가 진짜에 가깝다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었다는 거지?”

“응. 형한테 사투리를 쓰는 내가 오히려 불편하고 영 자연스럽지가 않았어.

나랑 사투리로 만나는 사람들과 서울말로 만나는 사람들이 다른 부류라고 느꼈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J가 말했다.

“진짜 자신이란 게 따로 있고 나머진 가짜라는 생각 때문이지.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지랄들을 하는데 그런 건 없는 거야.”


사투리 얘길 꺼냈을 땐

굳이 말리지 않았던 J가 나는 잠시 얄미웠을까.

더 멀리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안심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렇게 힘이 든다.

더구나 매번 나를 고민에 빠뜨리고

그 앞에서 뻔한 이야기를 삼가야 하는 사람과는 더욱 그렇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 힘이 드는 관계는

자주 보질 못한다.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만나게 된다.

그게 가장 적당한 거리인 것이다.


요즘들어  

J는 나를 만나러 나올 때마다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상상을 하고 온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처음엔 오해할 뻔 했는데 그건,

그래야만 날 만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뜻이란다.


가진 걸 다 쏟아내는 만남은

절대 잉여롭지 않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마지막 만남이 어떻게 잉여로울 수 있을까.


돌아보면

우리는 얼마나 숱하게

다음에 안봐도 못봐도 그만인

만남들을 지속해왔나.


나는 J와 헤어질 때마다

그의 말과 태도를 곱씹으며

그의 돌아서 가는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한다.

손끝을 떠난 공에서 눈을 떼지 않는 투수처럼.

다시는 못볼 사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울어야 할 때 울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