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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Mar 24. 2021

쿠팡노동자와 노동법

디지털시대, 코로나이후 시대 노동법은 바뀌어야 한다

독일의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도 배달업. 요기요를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 하면 역시 대공장의 남성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런 우리의 일반적 인식에 균열을 내고 있는 사회변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에게 노동자는 쿠팡으로 대표되는 배달노동자가 일반적인 노동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외출이 자제되면서 배달노동자는 우리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노동자’라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부를 제외한 노동자들은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법원이 특수고용노동자로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독립적인 계약노동자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영업자’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도 그렇다. 즉 현재의 노동법으로는 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이다. 도서 ‘뭐든 다 배달합니다’에서도 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한 배달노동자의 실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법 밖의 ‘노동자’들이 600만명이 넘는다는 분석이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2014~2018년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내역에 관한 국세청 자료로 추산해보니, 납세경험이 있는 인적용역제공자가 613만명에 이른다. 특수고용노동자로 인정되는 사람들의 규모는 전체 취업자 수의 8%로 추산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플랫폼노동자로 불리는 배달노동자나 우버형 운전기사 등의 규모는 5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2016년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내 플랫폼노동자의 규모는 전체 취업자의 10% 정도로 추산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확산과 디지털 시대의 기술발전, 자동화의 증가 등으로 이같은 추세는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법 체계를 그대로 둔다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2018년 캘리포니아에서는 '우버'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AB5법이 통과되어 사회적으로 큰 인식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임을 고용하는 측에서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버 등 플랫폼을 공급하는 측이 플랫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교묘하게 바꾸기도 하고 여전히 자영업자로 보는 발의안을 주민투표로 통과시켜 피해 나가고 있다. 우리도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타다' 운전기사들의 경우 애플리케이션에서 배달노동자를 직접 규율하는 방식을 간접적 방식으로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의 지위를 유지하려 한 적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과 관계를 맺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이들 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의 노동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앞서 말한 캘리포니아의 AB5법도 그렇지만 유럽연합도 2017년 ‘근로계약의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들에게 사회적 보호가 제공될 것을 제안하는 유럽 사회 보장 권리 규약(European Pillar of Social Rights)의 틀을 만들었다. 프랑스도 플랫폼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엘 코므리법(the El Khomri Act)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전국민고용보험제의 도입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노동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가 배달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도입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금의 노동법은 ‘공장’과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던 시대의 법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노동형태인 플랫폼노동자들은 단결권도 단체교섭권도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험난하기만 하다. 이 새로운 노동형태들은 불안정하거나 시간제 형태로 확장되어 갈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조금씩 인식이 확장되고 하나 둘씩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이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을 위한 협력공간과 공동의 공간 마련, 플랫폼 기업들의 노동조합 허용, 보편적인 의료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대적용, 플랫폼 노동자들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유하는 것(고스트워크, 메리그레이, 시다스 수리, 신동숙역, 2019, 한스미디어에서 참고)등에 대한 제안이 이미 있는 것처럼 새로운 노동법의 필요에 대한 인식은 확장되고 있다.



최소한 새로운 노동법의 필요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조건을 들여다 볼 때 비로소 이들을 법의 사각지대에서 끌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함께 누리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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