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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Jan 25. 2024

나는 이제 착한 딸 안 할 거야 -4-

아빠랑 이혼하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래?

나는 대학을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갔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지긋지긋한 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살았다. 그러던 중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랑 이혼을 해야겠어."


이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숱하게 봐왔다. 아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부모님의 이혼은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올 게 왔구나. 드디어 엄마가 결심을 했구나.


"네가 좀 도와줄래?"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무척 떨리고 있었다. 안심시켜 주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엄마, 나는 엄마를 이해해. 나라면 아빠랑 하루도 같이 못 살았을 거야. 여태까지 같이 산 것만 해도 대단해. 내가 알아볼게."


사진: Unsplash의 Quino Al


그 후로 변호사를 알아보고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22살이었던 내가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다니면서도 부끄러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엄마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꺼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러 명의 변호사를 만나 상담했다.  중간중간 엄마에게 진행 상황을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썼다.  그중 제일 믿음이 가는 분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본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말에 엄마와의 미팅 날짜를 잡았다. 미팅 약속 3일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냥 조금 더 참고 살래."


자식들과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못하겠다고 말하는 엄마. 나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고 말하는 엄마.

방법을 마련해 주고 알려줘도 결국 엄마는 걸어 나오지 못했다.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좌절감, 벗어날 수 없다는 깊은 절망.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참겠다는 말에서 깨달았다. 엄마가 아직 홀로 설 용기가 없다는 걸, 그리고 나는 엄마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한다는 말이 위안이 됐으면 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엄마의 삶이 가엾었으므로. 이해한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엄마는 이해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쩌면 엄마는 이해한다는 말이 자신의 모든 걸 받아주겠다는 말로 들었던 걸까. 아니면 아빠 대신 붙잡을 동아줄이 필요했던 걸까. 어찌 됐건 그 후로 엄마와 나의 관계가 달라졌다. 가족 대소사도 대화가 안 통하는 아빠 대신 나와 먼저 상의했다. 수시로 전화가 왔다. 주제는 늘 한결같았다. 아빠에 대한 불만, 그럼에도 이혼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 언제나 '너는 엄마를 이해하지?'로 끝났다.


엄마의 고민거리를 최대한 없애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해결 방법을 생각했다. 그게 맏딸의 역할이라 믿었으므로. 엄마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 더 열심히 위로를 건네고, 해결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더욱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나는 점차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어졌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악순환이었다. 이런 게 딸의 역할이라면,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거라면 나는 딸을 낳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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