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너한테 돈 주잖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원가족에게서 벗어났다 생각했다.
자주 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나의 가정을 꾸렸으니.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가 내가 그동안 애썼던 노력들, 나의 가정 전부를 쥐고 흔드는 느낌이었다.
가게 오픈 준비로 일주일 꼬박 가게에 매달려 일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되어 들어온 날도 있었다. 엉망이 된 집과 아이들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 정도 오픈 준비만 도와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오픈을 하고 나서도 한 달째 가게로 출근하는데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맴돌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부모님에게 끌려다닐까.
긍정적으로 생각을 돌려보려고 시도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하면서 부딪히는데, 부모님 가게에서 연습하는 셈 치지 뭐.'
'이 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마케팅 공부를 해가면서 해보는 거야.'
스스로에게 말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가기 싫어졌다.
무엇보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강한 박탈감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가게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이 잠든 밤이 되면 매일 울었다.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다시 갇힌 느낌이었다.
그런 지경인데도 엄마에게는 괜찮은 척했다. 엄마에게는 조금이라도 '나 힘들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힘든 상황에서 견뎠으니, 내가 처한 상황쯤은 '그까짓 거'라고 할 것 같았다. 또 나까지 엄마의 한숨에 보태고 싶지 않았다. 매일 푸념하는 엄마에게 걱정 하나를 더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괜찮은 척해야 했다. 버텨내야만 했다. 엄마에게도 누구에게도 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점점 가게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길을 헤매다 겨우 도전해 볼까 마음먹은 내 꿈은 이제 한편에 버려두었다.
매일 아침 목줄을 차고 있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아이들도, 내 꿈도, 우리 가정도 모두 엉망이 되어 가고 있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 부모님 가게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얼마를 줘야 네가 안 섭섭하겠노?"
대뜸 보수를 얘기하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언뜻 백지수표를 내미는 듯한 말이었지만, 누구보다 매출을 아는 상황에서 많이 바랄 수도 없었다. 최저시급으로 쳐도 반도 안 되는 금액을 얘기하면서 스스로 자책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그 와중에 매주 친정 가는 날은 꼬박꼬박 참석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는데, 엄마가 가게 매출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었다. 얼마 정도라고 금액을 얘기했더니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것밖에 안되냐는 말에 현재 가게 사정을 상세하게 얘기했다.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단열이 잘 안 된다는 점, 그래서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는 것, 영하의 날씨에는 화장실 변기까지 얼어붙었다는 것, 새벽에 남편을 깨워 파쇄기로 얼음을 깬 일들. 그간 전혀 얘기하지 않았던 고충들을. 그랬더니 대뜸 엄마가 말했다.
"그럼 전에 임대했던 사장은 어떻게 영업했는데?"
날 선 비난의 말이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내 무능력을 짚는 말 같아 죄책감이 드는 한 편 너무 억울했다.
"그 사람은 자기 거잖아. 직원 안 쓰고 혼자서 다 했잖아. 엄마는 왜 가게에 한 번 나와보지도 않고 주야간 직원 돌리면서 이익 안 난다고 한숨인데?"
그렇게 터져 나온 화는 폭발하듯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지난 세월 꾹꾹 응축해 놓았던 모든 화들이 다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모두 뱉었다. 엄마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돈 주잖아!"
그 말에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다 사라졌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온몸이 화로 부들부들 떨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먹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일주일 간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