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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Feb 07. 2024

그리워하던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신 할머니

영면하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외할머니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쓰러져 세면대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셨다. 함께 살고 있는 이모는 새벽 4시에 출근을 했고, 퇴근 후 쓰러진 외할머니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에서 검사 중 코로나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격리 병동에서 의식 없이 일주일을 보낸 뒤 영면하셨다.



내가 태어나고 우리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외할머니 댁 방 한편을 빌려 살았다. 쪽방에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견고하지 않은 나무 문 사이로 엄마와 아빠의 싸움 소리가 새어나가도 외할머니는 전혀 말리지 않으셨단다. 그러나 내가 엄마한테 혼날 때면 언제나 문을 벌컥 열고 나를 할머니 뒤에 숨기셨다. 

"와 아를 혼 내노." 

할머니 다리 뒤에 숨어 엄마 눈치를 보며 바짓가랑이를 꼭 움켜쥐었다. 그러면 이내 엄마는 더 이상 혼내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내 손을 붙들고 엄마를 피해 밥을 먹여주고 눈물을 닦아 주셨다. 그렇게 속상했던 마음이 할머니가 떠먹여 주는 밥과 함께 꼴깍 넘어가곤 했다.




할머니는 올해 구순이 되셨지만 아픈 다리를 끌고 정원의 풀을 손수 매셨다. 딸들의 성화에도 풀이 나는 걸 그냥 어떻게 두고 보냐며 항상 깔끔하게 정원의 잡초들을 뽑으셨다. 지난해부터 유독 잔병이 잦으셨고 한 번 접질린 다리가 몇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인공 심장 판막의 수명이 다해 걸을 때마다 거친 숨을 쎄엑쎄엑 몰아쉬셨지만, 나들이를 좋아하셔서 언제나 딸들의 외출에 따라나섰다. 오래 걸어야 하는 길에는 느덜끼리 다녀오라며 차 안에서 혼자 한참을 기다리시던 할머니를 보고 엄마가 말했었다. 할머니가 오래 사셔봐야 1년 정도겠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할머니와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다만, 할머니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편안히 침대에 누워 가족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른 사람에게 해 끼칠 줄 몰랐던 할머니. 평생을 겁 많고 부끄러움 많았던 할머니. 누가 찾아오는 게 두려워 매매로 내놓은 집을 보려고 부동산에서 찾아와도 집 안에서 숨죽이고 계셨던 겁 많은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격리된 병실이라는 게 참 애달프다.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계신 공원묘지 옆자리에 묻어드렸다. 나는 영혼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으니 이래서 사람들이 간절히 영혼의 존재를 믿는구나 생각했다. 



외할아버지는 생전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다. 할아버지의 성화에 마지못해 교회에 나가서 꾸벅꾸벅 졸기만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더욱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할머니에게 엄마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천국에 가셨을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교회에 가야 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뒤 데리러 올 테니 잘 지내고 있으라고 두 분이서 약속했단다. 격리된 병실에서 남은 가족들은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분명 마중 나오셨으리라 믿는다.  두 분이서 떨어져 지낸 게 15년이다. 그사이 못했던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나누고 계시겠지.


© chrishcus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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