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수다방 까까맨
요즘 스트레스와 환경적 요인으로 탈모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머리숱에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유전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은 요즘 시기에 행운아인 것이다. 나는 유전의 영향이라 생각하는데 머리숱이 많고 머리카락도 두꺼운 편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에는 나의 자랑이 되었지만 한창 멋을 내고 싶었던 젊은 날에 나는 머리숱 많은 것이 싫었다. 파마를 하면 머리가 부해지면서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머리 기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그즈음 한번 하고는 대체로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또 머리숱이 있다 보니 날이 더워지면 머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라 한 달에 한 번은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가게 된다.
이런 나와는 정반대로 여동생은 머리카락이 가늘다 보니 숱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머리가 주저앉는다. 파마를 해도 아침에는 컬이 조금 살아 있다가 저녁때는 머리가 주저앉아 초췌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도 빠지기 시작하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머리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고향 동네 자그마한 미용실이 있는데 자매가 운영을 하고 있다. 이름은 '까까맨'이다. 구수한 이름의 이 미용실 원장님은 젊은 시절 미용사로 대도시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너무 힘든 근무 환경이 싫어서 고향에 내려와 동생과 함께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일요일에는 미용실이 휴무이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운영 형태이지만 고객들은 원장님이 머리에 대해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예약을 하고 온다. 그 미용실은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종종 가다 보니 우리도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머리 관리는 대도시 유명한 샵처럼 해주는데 6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다. 동생은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 머리가 힘이 생긴다고 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관리를 받고 손질을 한다. 다른 곳에서 머리를 했지만 다 실패했다고 하면서 세종에서 태안까지 달려와서 머리를 하곤 한다. 나도 덩달아 고향에 내려가서 동생과 같이 머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들 머리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이렇게 한 달에 한번 내려올 거면 날짜를 정해서 둘이 함께 와라... 머리 하는 값은 엄마가 내줄게... 와서 엄마랑 점심 먹고 머리하고 하루 놀다가 가" 하시면서 파격 제안을 하셨다. 깜짝 놀라 정말이냐고 물었더니 친정 엄마가 그거 하나 못해주겠냐면서 호기롭게 제안을 하셨다. 같이 듣고 있으신 미장원 원장님도 놀래고 딸들도 놀랬지만 엄마의 제안은 한편으로 마음 아프게 들렸다. 딸들과 보내고 싶으신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거다. 한 달에 한번 딸들과 수다 떨고 맛있는 거 먹는 시간이 좋으시단다.
그동안 엄마도 많이 바쁘셨다. 젊으신 나이에 홀로 되어 4남매를 대학까지만이라도 보내시겠다는 생각으로 꼭두새벽부터 밤 12시 넘게 학교 앞 매점을 하셨고 주위에 편의점들이 들어오면서 경쟁력을 잃은 매점을 폐업하고는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셔서 젊은 사람들도 어렵다는 4년 내 졸업을 거뜬히 해 내셨다. 졸업 이후에는 문화센터에서 수영도 하시고 교양강좌도 들으시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으신 거 같다. 그런 찰나에 딸들의 미장원 방문이 늘어나니 파격적 제안을 하셨고 우리 자매는 재력 있는 엄마를 두어서 좋다며 얼른 승낙했다. 그러나 바쁜 딸들은 그 약속을 채 1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각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코로나와 바쁜 일상으로 엄마와의 약속은 흐지부지 흘러가던 차에 동생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언니,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미장원에서 한번 보자고" "그래, 시간 내어 볼게" 엄마에게는 전화도 하지 않고 동생이 미리 예약해둔 날짜에 휴가를 내고 시골에 내려갔다. 엄마는 바쁜 딸에게 방해가 될까 봐 전화도 아닌 카톡으로 "너는 머리 하러 오니?"라고 수줍게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 문장에는 보고 싶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마음이 짠했다. 엄마를 만난 우리 자매는 함께 아나고탕을 점심으로 먹고 미장원에 가서 수다를 떨며 예쁘게 단장을 했다. 그래도 고향 왔으니 바다를 보고 맛난 거 먹자며 한 바퀴 드라이브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엄마 집에 돌아왔다. 동생은 일이 있어 바로 출발하고 나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엄마의 정성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지나가는 말처럼 하신 말이 계속 맴돈다. "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전국 좋은 곳도 구경하러 다녔으면 좋겠는데 어디를 못 가니 시간이 아까워" 바쁜 자식들에게 시간을 내라고 하시기에는 미안하시고 당신의 젊은 오늘이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 여운이 남는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폐업했던 미장원 수다방을 다시 열어야겠다.
한 달에 한달에 한번 시골 미장원 모녀 수다방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