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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Apr 06. 2022

전지적 딸 시점 - 금팔찌

나를 기억해주는 연결고리!!

어느 날 엄마에게서 온 전화 소리에 깜짝 놀랐다. 

" 야~~ 니네 시집갈 때 제대로 된 보석 하나 못해줬는데, 우리 집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내가 선물 하나씩 해주려고 하는데 니 신랑은 무얼 해 주면 좋겠니?"

"아니 시집 장가간 지가 몇십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선물을 해준다고 혀? 사위들하고 딸하고?"

"아니지~~ 우리 집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니 사위하고 며느리지. 우리 자식들 말고"

"아이고 신경 쓰지도 마셔요. 사위들도 안 받는다 할 것이고 며느리들도 생각 없다 할 것이니 신경도 쓰지 마셔요"

"아녀~~ 그게 뭐 하나 해주면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걸 보면 나를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잖니... 연속극 같은 데서 보면 그러더만...."

"............  음 알았어요... 물어볼게요"


이게 무슨  뜻이지?라는 생각으로 잠시 멍하게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동네에서 계모임이 다시 유행하나? 아니면 어르신들 사이에서 자식들에게 죽기 전에 선물해주는 것이 유행인가? 뒤숭숭한 마음이 들었지만 흘려보내고 지나가는 말로 우리 집 옆지기에게 장모님의 큰 뜻을 전했더니 자기는 그런 거 필요 없다며 절대 못 받는 다고 전하라는 근엄한 대답을 들었다. 혹시 몰라 동생에게도 물어봤더니 엄마에게서 똑같은 주문을 받고 제부에게도 물어보니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필요하다면 시계 정도로 하겠다고 했단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시계 정도이지 치장을 할 것도 아니고 금목걸이는 동네 주먹세계의 느낌이 나서 절대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나저나 며느리들도 요즘 누가 금으로 된 것을 하냐면서 차라리 돈으로 주시면 필요한 거 사겠다고

했단다.


사위와 며느리들이 보석은 다들 부담스럽고 싫다는 표시를 해 왔다. 그럼에도 어느 날인가 동생과 내가 시골에 갈 일이 있을 때 읍내의 금은방 주인에게 미리 금값을 흥정해 놓으신 엄마는 다짜고짜 금은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의기양양하게 두 딸을 데리고 금은방에 들어가셔서 "아이고 내가 지난번 전화했을 때 금값으로 해주는 거쥬? "하시면서 먼저 선수를 치시니  금은방 주인은 "아이고 어머님 금은 시세에 따라 달라지는데 요즘은 조금 올랐어요?" 하니 엄마는 금방 "그런 게 어디 있디야? 그 값으로 해줘야지~~"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걱정 말고 골라 보라신다. 동생과 나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여쭙고 이것저것 걸쳐 보고 껴 보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너무 과하게 반짝이는 순금보다는 18k나 14k가 맘에 드는구먼, 엄마는 무조건 순금으로 몇 돈을 해야 한다면서 빨리 고르라 재촉이시다. 사위들은 싫다고 했고 딸들도 보아하니 시골 금은방이라 디자인이 썩 내키지 않아서 그냥 이리저리 만져 보고만 있으니 금은방 주인께서 딸들이 엄마를 해드려야지 엄마한테 받는 거냐면서 다음에 엄마도 해드리면서 같이 하시라고 농담하셨다. 딸들이 주저하니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금은방을 나서면서 "아니, 내가 돈 있을 때 해준다는데 왜 안 한다냐? 반지나 목걸이가 싫으면 갖고 싶은 걸로 해라. 내가 반지 해주려던 돈을 줄 테니 걱정 말고" 라며 강력하게 본인이 꼭 해주시겠다는 의사를 보이신다. 


아버지 없이 혼자 사위와 며느리를 맞이하면서 예물 하나 변변히 못해준 게 마음에 걸려서 꼭 해주고 싶으시단다. 우리 옆지기는 본인이 가지고 싶었던 아이패드, 제부는 시계, 며느리들은 현금으로 각각 나눠 받았다. 우리 집은 엄마가 주신 돈에서 아이패드를 사고 얼마의 돈이 남아서 이를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그러다 엄마가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 그게 뭐 하나 해주면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걸 보면 나를 생각하기도 하구 그러잖니... 연속극 같은 데서 보면 그러더구먼...." 엄마는 이 세상에 엄마가 없어도 우리 집으로 시집오고 장가 온 며느리와 사위들에게도 기억되고 싶으셨던 거다. 그 마음은 몰라주고 다들 현금이 좋다느니, 시대가 변하면 없어질 물건들을 사겠다고 했으니 본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이셨다. 결국 나는 그다음 주에 시골 금은방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옆지기 아이패드 사고 남은 돈에 내 돈을 보태서 나와 두 딸의 금팔찌를 맞췄다. 내 돈이 더 들어갔지만 엄마는 금은방 주인장님께 어깨를 으쓱하시면서 금값을 흥정하시게 되었고 그 덕에 세공비를 싸게 해 주셨다. 


변하지 않는 금으로 만든 팔찌는 손녀에게 외할머니를 기억하게 할 것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바뀌더래도  전해지더래도 지금의 엄마를 기억하게 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될 것이다.  엄마의 얼굴에서 만족해하시는 웃음을 보고서야 나도 마음 한편이 가벼워졌다. 엄마가 세상에 없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을 갖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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