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냐?
삼대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다문화 가족이다. 국적이 다른 다문화가 아닌 세대가 다른 다문화이다. 우리 집에는 백 년의 향기까지는 아니지만 반세기의 향기를 품고 있다. 193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출생 연도가 다른 3세대가 모여 살고 있다. 우리나라 격동의 시간을 보내었던 우리 집 최고 어르신인 시어머님이 연세로는 80대 중반이 되고 우리 집 막내는 이제 막 20대를 넘겼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다르고 각자가 살아오고 경험한 세상의 이야기로 의견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정말 다른 세상 사람들이 모여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겪었고 농촌 사회를 경험하면서 느꼈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다. 70년 새마을 운동과 함께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나마 30년대생이신 시어머님의 '쌀'과 '밥'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만 90년생들인 우리 아이들은 버거워한다. 세상에 주식이 꼭 '쌀'은 아닐진대 우리 어머님의 기준은 모든 것이 '쌀'로 통한다. 물물거래처럼 그 옛날 물가를 '쌀' 한가마가 기준이고 그 당시에 가격으로 환산하여 평가하신다. 예전에 '쌀'한 가마가 80kg이었고 20만 원이었던 시절과 지금은 '쌀'의 종류에 따라 가격도 다양하고 '쌀'의 무게도 '5kg'에서부터 '20kg'까지 다양하게 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쌀'한 가마에 대한 기준이 달라 서로 다른 가격의 쌀값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더욱이 쌀 가마니를 보지도 못하고 쌀은 마트에서 본 게 다인 90세대에게 쌀 가격이 생활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가슴과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쌀'은 생활비의 기준이었으며 '밥'은 생활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해되는 30년대생이신 어머님, 60년대생인 남편과 '밥'은 먹거리 중에 하나로 인식하는 70년대생인 나와 90년대생인 아이들과의 갈등은 서로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며 살아가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밥'이 중요하다고 아침밥은 어머님이 아침 일찍 일어나 따뜻하게 지어서 내어 주시는데 이를 먹기에는 아침에 나와 아이들의 속이 부담스러워 힘들어한다. 부담스러움에 30년대생이신 어머님께 타 먹는 효소와 아침주스 등 다양한 대체식을 제시해서 먹어보기도 했지만 최종 결론은 '밥'으로 내려졌다. 그 이후 아침 식사는 30년대생 어머님과 60년대생 남편만의 식사가 되었고 나와 아이들은 식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먹는 것에서 서로 다름이 인정이 안되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자기들만의 식단을 요구하면서 주중에는 식탁에서 볼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왜 그렇게 '밥'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춘기 때는 '밥'문제로 갈등이 심각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20대가 되고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해 가면서 할머니가 왜 그렇게 '밥을 챙겨주시며 애달파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30년대생이신 어머님도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시기 시작하시면서 표현도 '밥' 먹어야 한다는 강요에서 안쓰러움으로 바뀌셨다.
내 삶의 시간을 거치면서 경험해서 얻었던 기준들은 그때 그 상황에서 맞는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다른 상황에서 경험하고 만들어지는 각자의 기준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지 않았기에 나는 잘 모른다. 한 곳에서 같은 언어로 이야기 하지만 서로 딴 세상, 남의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 모름에 대해 인정하고 서로가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 한다면 나의 삶은 함께하는 이들과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라테의 대명사인 할머니, 아빠, 엄마의 엉뚱한 고집을 귀엽다고 봐주는 MZ세대 아이들과 우리 집은 오늘도 한 지붕 아래 삼대의 저 세상 이야기로 울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