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국립공원 산에 가다.
북한산 곁에서 나고 자랐지만 막상 주봉 꼭대기는 왠지 오를 염두를 못 내고 맘속으로 그리움만 품어왔다. 늘 곁에 있어준 북한산에 대한 애정을 이번 6일간의 추석연휴에 둘레길을 돌면서 나눠보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워 보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연휴시작 하루 전에야 북한산둘레길인터넷창을 열었다. 대략적인 거리와 시간등을 고려해 1구간에서 4구간까지 출력해서 배낭에 접어 넣었다. 핸드폰에서 그저 클릭만 하면 쉽게 검색한 것을 찾을 수 있는데, 굳이 종이에 출력하는 아날로그식 삶의 방식을 보면서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안내에 따라 제1구간 소나무숲길 출발지를 찾아 우이역에 내렸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더듬더듬 북한산둘레길 안내판을 보면서 스탬프도 찍을 요량으로 인증샷을 찍어본다. 둘레길 시작지점에 도착하니 한쪽은 소나무길, 다른 한쪽은 백운봉 표시가 보인다.
잠시 얼어붙었다.
둘레길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빨려 들어가듯 백운봉 쪽으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졌다.
계획 없이 오르는 산길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 오랜 그리움이었나 보다.
입구 도선사까지 가는 탐방로도 유쾌하고 즐겁다. 새로운 경험은 모든 감각을 깨운다. 계곡물소리, 벌레소리, 햇살에 빛나는 거미줄까지 손님으로 찾아가는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멀리 인수봉이 보인다. 참 멋지고 잘생겼다.
인수암 암자에서 키우는 삽살견들, 오가는 많은 등산객 곁에서 스님들이 수행하기 쉽지 않으실 듯하다.
가파른 바위산길, 홀로 오르는 길이지만 맘은 편안하다. 힘들면 쉬고 걷는 속도도 그저 내 몸상태에 맞추면 된다. 한걸음 한걸음 체중을 엉덩이에서 허벅지, 종아리, 발끝까지 옮겨가며 리드미컬하게 오른다. 내딛는 걸음걸이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 실어본다. 짬짬이 쉬면서 물을 마시고 가져온 사과조각으로 갈증을 풀어준다. 정말 꿀맛이다. 어느새 걷다 보니 정상에 가까웠다. 이곳은 이미 국제적인 명소가 되었다. 백운대 너른 바위 위에 다양한 국적의 많은 젊은이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탄성이 울려 퍼진다.
아침에 계란지단을 만들며 준비한 김밥을 꺼내 배를 채우고 이 감동적인 순간을 딸들과 나누고자 영상통화를 한다.
그리곤 배낭에 짊어지고 온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무겁게 이걸 가져가야 하나 내심 고민했지만 핸드폰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장면, 조금이라도 더 담고 싶은 욕심이 그 무게를 감당하게 했다.
바위봉우리 한켠 수묵화처럼 은은히 보이는 산새가 품위 있고 신비롭다.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그저 바라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굳이 탁주 청주를 벗하지 않아도 충분히 취하고도 남을 멋진 전경이 넉넉히 펼쳐져있다.
회색빛 구름과 사이사이 빛나는 흰구름 하늘이 800미터 정상과 만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게 손짓한다.
이 멋진 잔치에 초대된 기쁨으로 나 역시 그저 뛰는 가슴에 즐거워할 뿐이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편하다.
더 늦기 전에 아쉽고 설레는 마음을 달래면서 조심조심 귓가에 익숙한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으며 바윗길을 내려온다.
오를 때와는 다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기슭에 도달했다. 아주 좋은 기분의 꿈결 같은 산행이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아쉬운 마음에 갈림길이었던 북한산둘레길 1구간 소나무길을 다시 더듬으며 천천히 들러보았다.
몸컨디션이 허락한다면 내일은 다시 둘레길 두 번째 구간으로 시작하던지 도봉산에 가보리라.
아침에 일어나니 맘은 벌써 도봉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래, 맘 가는 대로 가자.
도봉산도 초행이라 안내표시판을 눈여겨 살펴둔다. 도봉산은 산전체가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니 놀랍다. 어제 보았던 북한산 바위의 감흥이 아직도 생생하다. 검버섯 가득한 바위에 새겨진 거친 주름은 세월의 깊이와 함께 장엄한 기상으로 가득했다.
자운봉 가는 초입은 잘 닦여져 있어 문경새재길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갈수록 산새가 조밀하고 거칠어 산세를 느낄 여유가 없다. 곳곳에 세워진 손잡이가 없다면 정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구슬땀을 쏟아내고 오른 마당바위에서 맞는 신선한 바람과 저 멀리 롯데타워,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펼쳐진 장관은 그간의 땀방울을 보상해 주고도 남았다.
감탄하며 전경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칠었던숨이 잦아들고 온몸을 적셨던 땀이 서늘하게 식어간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 신선대, 자운봉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0.9km 남았단다. 한발 한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롯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촘촘한 계단을 지나 신선대에 오르는 가파르고 좁은 암벽길은 철봉손잡이에 온몸을 맡겨야 간신히 오를 수 있다. 쫄깃해지는 심장을 심호흡으로 달래며 온정신을 내딛는 발걸음과 쥐어잡은 손에 집중해야만 했다.
좁디좁은 신선대에서 몸 붙일 곳을 간신히 찾아 자리를 잡으니 하늘아래 첫사람이 되었다. 거칠 것 없는 푸른 하늘을 온전히 독차지한다.
이 순간‘무빙’의 김두식이 되고 새가 되어 구름을 벗삼아 하늘을 날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정상에서 맛보겠다고 아껴온 샌드위치를 떨어뜨릴까 조심스레 꺼내 먹고서 오늘도 700미터 정상에서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문명의 호사를 누린다.
드높은 가을하늘 푸르고 맑다.
하루 또 하루
홀연히 산은
자신을 내어주며
내딛는 걸음걸이 안에
바위깊이 새긴 주름처럼
늘 곁에 있어준 소중한 이들
그리운 마음
아로새기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