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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식물 01. 사과


이름: 사과나무

품종: 사과

나이: 2세(2024년 4월 기준)



사뭇 낯선 외양이지만 틀림없는 사과나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씨앗에서부터 직접 길러왔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한 일은

마트에서 파는 사과를 맛있게 먹은 뒤

수분을 넉넉하게 머금은 키친타월에 씨앗을 며칠 방치해 싹을 틔운 다음

흙에 옮겨 심은 것뿐이다.

그 밖에는 사과가 다 알아서 자라줬다.


‘다 알아서 자라준’ 것치고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봤는데 씨앗에서부터 자란 사과나무는 약하다.

그래서 사과 농가에서는 보통 접목하여 기른다고 한다.

그렇게 태생부터 약한 우리 집 사과는

언젠가부터 누가 슈가 파우더라도 뿌려 놓은 듯 잎과 줄기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슈가 파우더가 앉은 지 며칠이 지난 이파리는 한없이 오그라든다.

광합성이고 뭐고 더는 잎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딱하게도 그저 슈가 파우더에 잠식되어 간다.


투병 중일 때 모습


인터넷에 질병을 검색하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모조리 생명을 위협하는 큰 병으로 귀결된다던데

인간의 질병은 고사하고 사과의 질병을 알 리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검색창에 ‘사과, 흰색 가루’를 쳐 보았다.

사진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무래도 우리 사과는 ‘흰가루병’에 걸린 듯했다.

이 병에 걸리면 감염된 줄기와 잎을 잘라내는 것 말고는 딱히 대책이 없다는 내용도 읽었다.

처음에는 흰 가루가 앉은 이파리 몇 장만 잘라냈는데

아무래도 단호하지 못한 가위질이 병을 키운 모양이다.

그래서 올봄, 눈 딱 감고 흰 가루가 덮여 있는 줄기까지 몽땅 잘라냈다.

자르고 보니 키가 반은 줄었다.     

새싹이 돋아났다


잎 하나도 아까워 자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건만

줄기를 반이나 자르고 나면 죽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했건만

사과는 늘 그랬듯, 알아서 다시 새싹을 내었다.

위를 보고 뻗을 줄만 알고 삐끗거릴 틈도, 주위를 돌볼 여유도 못 가지던 내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새로 돋아난 싹은 더 씩씩하고 맹렬하게 자라는 중이다.


기르는 동안 일자로만 쭉쭉 자라는 사과를 보며

내심 방사형으로 가지를 뻗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예쁜 수형의 바람도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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