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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Feb 23. 2021

상담사는 그렇게 다시 내담자가 된다.

퇴근하면 내담자 자리에서 우는 상담자

지금껏 수강해 온 심리학 교과목을 떠올리면 이십개 정도의 과목명이 눈 앞에 촤르르 펼쳐진다. 눈을 감은 채 열 개 정도는 바로 떠오른다.


‘심리학개론, 성격심리, 학습심리, 집단상담, 진로상담, 심리검사,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발달심리학, 대상관계 심리학, 상담사례와 실습’


대학교-대학원까지 이어진 공부는 마음 공부였지만, 내 마음보단 책을 더 가까이 했다.


스무 살부터는 줄곧 이 분야에만 관심을 쏟았다. 전공 수업시간에는 자주 전율이 일었다. 심리학의 모르는 영역을 새로 배우는 게 즐거웠다. 수업을 마치고 공간이 되면 도서관으로 가서 곧장 복습을 했다. 밤을 새서 전공 공부를 하던 날에도 고등학생 때처럼 캄캄하진 않았다. 열심히 한 결과로 좋은 학점을 받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못난 마음이 줄어 들었다. 십대 시절 바닥난 자존감이었지만 성취의 조각들이 테트리스 모양으로 점차 쌓여갔다. 심리학 공부를 하는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심리학은 그 시절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걱정한 것처럼 너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너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이 통계수치를 봐. 어때? 많은 이들이 있다는 데 괜찮아지지? 정신장애 통계편람에 실린 진단기준을 보면서 기준에 해당되더라도 학업일의 다하고 본분을 지키고 있잖아. 너는 네 일을 잘 하고 있어



위로의 말만 쏙쏙 찾아 크게 들었다. 그러다 가끔은 ‘심리학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났나 봐.’하며 오해(?)하며 선순환의 쳇바퀴를 굴렸다. 이만큼 나 자신의 쓸모를 발견해주고 재미를 주는 일은 없기에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심리학’이라는 헤드라이트는 앞길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현장에 나와 상담사례 수련을 착실히 받았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했지만 주변에 함께 공부하는 동기와 수련생은 같은 길을 걸었기에 불안함은 없었다.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다. 대학을 처음 들어가서 만난 전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졸업 논문 학기에 한 대학상담센터에서 인턴 상담원이 되었다. 인턴 수련이 1년 과정이라 남들은 별 관심없이 묻는 진로에 관한 질문에도 어렵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해도 인턴 수련받으면서 자격증 준비할 거야.’하는 쉽고 명쾌한 답지를 가지고 있었다. 

막막함이 적었다.


계획된 모습 그대로 실패가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겪은 갈등이 많고 불행한 가족 안에서의 고민은 이따금씩 여고생에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정체성의 혼란을 주었지만 다행히 좋은 선생님의 지도로 어렵지 않게 잘 맞는 전공을 정할 수 있었다. 고3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하던 날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을 붙잡고 아빠 이야기만 잔뜩 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집이 싫어 밖으로 나온 많은 날에도 갈 곳 없어 결국 독서실로 향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에는 이소라의 FM 음악도시를 들으며 독서실로 이동했고 독서실 내 자리에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이 붙여져 있었다.



노력이 배반하지 않은 덕에 스무 살부터 공부한 걸 이어서 대학원에서는 더 어렵게 했다.

수능이 끝나고 원하던 자격증을 얻기까지는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상담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수업 때 만난 교수님들의 여유로운 미소는 내게 더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았다.


수련을 마치고 상담사가 되면 자신도 타인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대인관계도 잘하고 갈등도 조율하고, 일과 사랑 두 가지에서 100점인 ‘완벽한 의미의 심리학자이자 상담심리사’






그래서였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하고자 하는 심리학도이자 자기 자신의 내면과 타인에 대한 소통을 강조하는 상담자가 이혼을 한다는 건 지금껏 쌓아온 세계가 충돌하는 일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스스로 자신에게 일어난 인생의 일을 독해할 수 없었다. 시간과 마음을 다해 한 피스씩 올려놓은 블록이 도미노처럼 쏟아져 내려 바닥에 어질러 있었고 발은 자꾸만 푹푹 빠졌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나같은 아이도 더 공부하면 더 행복한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학자, 특히 심리학을 한 사람들은 자기 문제에서 출발점을 정하고 뛴다. 나의 출발점은 사춘기 시절의 죽고 싶어하던 마음이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영화 <벌새>의 은희를 떠올리지만 영지선생님 마저 없었다. 모자란 나 자신을 미워하면서, 그 마저 힘에 부치는 날이면 세상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았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나를 불편해하는 가족들에게 둘러 싸여 지냈다.


학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을까


결혼생활이 막바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 3년간 분석상담을 받은 상담선생님에게 추후상담을 신청했다. 함께 사는 5개월 동안 우울이 깊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기간동안 상담 선생님을 떠올리진 못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일만 반복되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만 알았을 뿐. 무기력하고 표정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상담자 앞에 앉았다.


열심히 한 공부는 상담자의 자리로 오게 했고 그동안의 삶은 계획대로 순탄했다. 

뚜렷한 계획 안에는 전문가 자격증도, 좋은 부부관계도 함께 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공부를 했고, 공부하지 않은 영역에서 인생 시험 문제는 나오질 않았다.



텍스트 북 속 심리학과 상담 이론으로 나는 마음이 아니라 머리만 컸다. 그러나 큰 머리만으로는 나의 삶을 잘 살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제야 무겁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며 알게 되었다.

학문의 가설을 함께 연구하며 따라갈 지도교수도, 적용할 이론도 없이 삶의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주로 내담자의 관계의 어려움을 상담자 자리에서 듣는 게 직업을 가진 이는

퇴근하면 내담자의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더 많이 알아서 더 잘 지낼 줄 알았던 환상은 힘을 잃었다.



다시 내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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