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몬도 Mar 16. 2021

내 상담사가 무당이 되어주길 바란 적도 있어

상담사도 상담받으러 가기가 어려워서


발밑에 마음을 질질 끌던 시절에 나는 처음으로 상담소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심리학을 전공한 동기들 사이에서는 상담받는 일은 아이허브를 통해 비타민을 주문했다는 것처럼 흔한 일이었다. 


나 : (심리상담) 괜찮더라고. 확실히 안 받았던 때랑 차이가 나.


상담을 받는다고 하는 일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 친구나 애인과 수다로 털어낼 수 없는 반복되는 내적인 문제가 있을 때 전공자로서 유일한 선택지이자 답지는 심리상담이었다. 심지어 대학 전공 수업에서 ‘대학 심리상담센터에서 5회 이상 상담을 받은 후 자기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기'가 과제인 적도 있다. 전공 과제를 하러 학생상담센터의 문을 열기 시작한 이래로 상담소 문턱 근처에서 줄곧 서성이곤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나의 문제로 상담소를 다시 찾은 시기는 초심 상담자로 현장에서 수련 3개월 차였다. 청소년 상담기관에서 만난 한 청소년 내담자의 복합적인 가족 이야기가 나의 가족 이야기와 끈끈이처럼 얽혀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내담자를 만나러 가는 날에는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이유를 모른 채 서서 눈물이 터지곤 했다. 그때 감정의 댐이 터진 것 같았다. 일상에서 찰랑찰랑 넘지 않을 정도의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겁게 떠오르자 가두어둔 감정이 한꺼번에 방류했다. 


그렇게 우는 일을 반복하다 상담소로 발걸음을 했다.


감정의 댐이 방류했다.


나라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와 상담자로서 과업이 연결되어 있어서 상담자는 상담을 받는다. 이렇게 상담자가 전문가 수련의 한 파트로 사례 경험이 많은 상담 전문가에게 받는 일을 ‘교육 분석’이라고 부른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상담사의 자기 분석을 한다는 뜻이다. 다시 상담소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는 사례 진행 중에 찾아온  버거움이었지만 그 사례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상담을 받았다. 

상담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퇴근하면 다른 상담소의 문을 열고서 내담자의 자리에 앉았다. 



3년간 같은 내담자 소파에 앉았다. 나의 상담자도 첫 교육 분석으로 3년의 기간 동안 받았다고 했다. 한 상담자에게 오랜 기간 동안 상담을 받는 일에 관해 상담자들 사이에서 내적 문제가 깊은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근면과 성실의 아이콘이 되곤 했다. 전문가로서 방치하지 않고 의지를 다져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여 자신을 탐구하는 일은 권장하는 지점이었다. 상담자 개인의 교육 분석은 삶뿐만 아니라 내담자 상담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결혼 식 2개월 전 오랜 상담을 종결하고서 8개월 뒤, 이혼을 결심하는 시점에 다시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추후 상담을 받고 싶다는 연락을 한 후에 익숙한 소파에 다시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상담사는 나에게 ‘오래 만났고 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별 일이 생기는 동안 상담사를 까맣게 잊어버린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다는 결혼생활을 나의 상담사가 예측하지 못했다는 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하고 3년 정도 상담했으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어.’


원망할 대상이 필요한 시기였고 상담사를 원망하고 싶었다. 1주일에 1시간씩, 상담에 와서 풀어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상담사는 내가 헤어지고, 좋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어리숙한 나보다 보다 더 긴 상담의 연륜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길 바랐다. 

무당은 가만히 있어도 삶을 맞추는데 무당보다 못 한 상담자가 미웠다. 




심리학이 과학이라고 대학 와서부터 내내 배운 건데도 내 상황이 되어 마음이 꼬였다. 상담사가 미래를 예측하고 결혼 전의 나를 뜯어말려주었으면 하는 유치한 바람을 품은 스스로가 창피하고 싫었다. 그리고 상담사를 다시 만나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만나기 위해서 꼬박 상담비를 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조차 당시에는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상담사에게 많이 의존했던 만큼 원망이 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엔가 상담도 미웠다. 친구들이 그렇게 관계와 취업, 애정의 문제를 위해 사주팔자를 보러 가고 신점과 타로를 찾으러 갈 때에도 심리학도로서 부지런히 상담실을 찾아갔다.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상담소를 가도록 추천해왔다. 동자나 선녀님 만나는 돈보다 상담실을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전문가와 이야기하는 게 더  낫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었다. 추천받은 친구들 중에 실제로 상담으로 향하는 친구는 드물었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미래를 꿰뚫는 곳을 찾는 친구들의 마음을 그때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time in a bottle'  © slowtheslow






비뚤어진 마음속 거울로 스스로의 모습도 직면할 용기가 없던 나는 상담에서 그때의 관계를 제대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바라던 관계의 모형을 허상 속에 지어두고 흐린 눈으로 서있었다. 자각하지 못한 시기였고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 렌즈를 닦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고 흐릿한 채로 두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와의 관계는 상담에서 다룰만한 필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글쎄 그때 이야기를 했다면 원가족으로부터 나와 쌓은 성이 모래성임을 바라보게 하면 다른 한 편으로도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굴절된 렌즈로 바라본 마음이 절댓값 0 이기에 상담사가 관계에 대하여 예측해줄 수 있는 가능성 역시 0에 수렴했을 뿐. 그렇게 그 시절을 돌이켜 해석하고 있다. 




마음의 장벽 없이 상담소를 다니던 나에서 정말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알게 된 건 단 하나이다. 

바닥의 시간에 사람들은 말을 잘할 수 없다. 마치 그 시간 속 나처럼.





'난 너무 지쳤어' illust Copyright © slowtheslow

커버와 본문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저작권자 slowtheslow에게 이용허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slowtheslow에게 있으며, 더 많은 작품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grafolio.naver.com/slowtheslo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