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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Feb 26. 2021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신혼집

반짝반짝한 물건들을 모두 놓고 신혼 집을 나섰다.



서른 하나였나. 민소매 실크 롱드레스를 입고 (한 남자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갔던 게? 뜨거운 8월의 여름이었다. 결혼식장도 바란대로 꼭 높은 천고를 가진 우아한 채플예식장이었다. 여기도 내가 골랐다. 식장 이미지는 내가 입은 우아한 드레스와 잘 맞았다.

생애 한 번한다는 결혼.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내 취향대로 했다. 청첩장도, 스냅사진도, 내가 고른 드레스마저 내 선택은 분명했다. 사람들은 종종 많은 선택지를 어려워 하지만, 나의 취향과 감성이 담는 선택을 하는 건 쉬웠다. 남들이 다 하는 걸 하면서도 특별한 걸 택했다. 청첩장 모임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드라이플라워 청첩장을 내밀었고 친구들에게 몬도스럽게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몬도스러운 것, 몬도가 좋아할 것이라는 건 대체적으로 널리 알려진 취향이었다. 친구는 쇼핑센터를 걷다 종종 사진을 찍어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어? 이 옷 완전 몬도st인데. 너 이거 사라.”


사진 속 옷은 주로 베이지색의 넉넉한 핏의 롱가디건이다. 비슷한 옷이 옷장에 열벌 있어도 내 눈에는 모두 다르게 보였다. 얘는 길이가 달라서, 이거는 금장 단추여서, 재질이 달라서.

새로 보는 베이지색 가디건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래. 너는 언니랑 집에 가자.’


취향이 곧 나였다.





내 삶은 인스타그램에 꼭 맞추어 사는 삶처럼 전시하기에 좋았다. 스마트폰 반짝이는 불빛 안에 정방형 사진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득했다. 보여줄 수 있는 게 참 많은 삶이었다. 동시에 상담실 안에서 내담자로 앉아 있으면 상담사로부터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리적으로 텅 비어있는 나였지만 취향이 많았어서 의구심이 들었다. 상담실에서 실컷 울고 합정역으로 와서 맛있는 디저트가 있는 단골 카페에 가서 기분이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티라미수와 아인슈페너가 서빙되어 테이블 위에 나왔다. 세팅이 된 상태에서 고운 사진을 찍는다. 언제 울었는지 모르게 사진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수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그러느라 취향은 인격인줄로만 알았던 시간이 길다.


SNS 속 사진과 당시의 심정은 차이가 많이 난다.




부자취향을 지녔지만 마음이 가난한 나의 마음도, 나를 향한 마음만은 갑부라고 믿었던 그의 마음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지를 갖고가면 적어도 그 역시 어디가서 창피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주변에 들었던 칭찬과 비슷했을까. 회사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른 결혼반지를, 모바일 청첩장 속 함께 찍은 스냅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그에게 ‘여자친구가 센스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왜인지 모르게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여자친구가 좋은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칭찬의 몫을 쉽게 가져갔다.



돌이켜보면 선택지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아 왔다.

내가 고른 본식용 웨딩 드레스는 놀랍게도 나만의 신체적 장점을 높이는 것이었으며, 1800년대 풍 서양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초록색 들판에 서서 들꽃 부케를 든 나는 정말 예뻤다. 새끼손톱만한 드라이 플라워가 압화되어있는 청첩장은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도 꽃이 각각 달라 개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떠올려서 줄 수 있어 특별했다. 그와 내가 자주 부르던 노래 <오르막길>을 축가로 선택한 건 얼마나 근사한지.


지금은 하나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신혼집을 떠올려보면 나무로 된 건 당시에 대부분 무인양품에서 샀다. 책장으로 가득찬 집을 만들고 싶었던 로망을 실현코자 나무 책장 가장 큰 두개를 이어서 벽 뒤에 붙였다. 칸칸마다 내가 고른 예쁜 청첩장과 스냅사진 찍을 때 썼던 화관, 결혼서약서 같은 것들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가전제품은 통일성있게 하얀색으로 맞추었다. 갤러리 같은 느낌을 나게 하는 ‘세리프TV’를 본 이후로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죽마고우였던 오랜 친구들이 선뜻 결혼 선물로 사주었다. 그에 맞추어 무선 청소기와 선풍기도 하얀색이었다. 심플한 디자인이 맘에 들어 일본 가전제품회사에서 만든 것을 샀다.


기억도 못했는데 얼마전 구매했던 사이트에서 이메일이 왔다.


‘휴면회원으로 전환됩니다.’





그 집에 린넨 커튼과 암막커튼을 이중으로 달지 말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쿵 듣고 그 집을 나섰다.


고른 그 물건들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을 한 건 나도 사람인지라 물질적인 손해를 생각하겠냐는 질문이지만 반질반질한 그 집에서 불행의 길임을 알고 있을 때에 조용히 울음을 삼키고 청소를 하던 시간이 더 아깝게 느껴진다.


취향이 가득한 그 곳에서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내가 고른 베이지색 소파에서 맥주를 마시다 새우처럼 굽은 등으로 슬퍼하는 나를 위해서는 온전히 아무일도 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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