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 Sep 27. 2019

교육학 선생님 (2)




  문제의 그날은 다른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선생님과 아이들 간에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수업 중에 ‘사람은 자기 숙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것은 다 하늘에 뜻이고, 나에게 벌어진 일은 어떤 것이든 운명이란 말이었다. 거기까진 ‘그래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따라온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만약에 여자가 성폭행을 당해서 아이를 임신한다면 그것 또한 그 여자의 숙명이기에 그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곳이 여고란 걸 잊은 걸까? 거기다 이곳은 말발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랑 18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 아이들은 흡사 4교시 종료 종이 울려 급식실로 뛰쳐나갈 때의 전투력으로 선생님의 말에 꼬리를 물고 덤비기 시작했다.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말도 안 돼요.”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애들 절반, 미친놈이 미친 소리 한다고 조용히 소곤대는 애들이 절반이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것 또한 다 하나님의 뜻인 겁니다. 그러니 애를 주신 거겠지요. 낳아야지요. 그럼.”

한 친구가 물었다.

“그럼 만약에 사모님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해서 아이를 임신하면 낳으라고 말할 수 있으세요?”




  다음에 나올 그의 대답을 함께 상상해보자. 그가 과연 자신의 가정에 불어닥친 불행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대답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아. 저희 집에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평소에 말 한마디 없이 공부만 하던 순둥이 모범생들까지 서로 짝꿍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정말 자기 말에 확신이 갖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강한 화력의 말발 총으로 총질을 해대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하나님이 방탄유리 소재의 은혜로 보호막을 쳐주시어 우리의 총알이 튕겨져 나가는 듯했다. 명랑 18세들은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수업종이 울리고서야 그 피 터지는 전투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책을 들고 급히 교실 문을 나섰다.   




  그의 수업 이야기가 학년 전체로 퍼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때 수업 방식 문제로 국어 선생님이 교체된 것과 같은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과목의 비중이 낮아서 일지도, 혹은 대체할 교사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념이 참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일성은 위대한 동지’라는 선전 문구도, 군대에 다녀오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된다는 전역 군인들의 말도 새삼 무섭게 다가왔다. 그가 매 수업 시간마다 교회 이야기를 한 것은 그냥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믿음과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그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그 믿음을 심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하던 그의 얼굴이 사이비 종교 교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후 교육학 시간은 전쟁 후 폐허처럼 고요했다. 명랑 18세들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의 교회 이야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방언을 해달라며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화기애애하던 교육학 시간은 오랜 시간 어색한 침묵만 감돌았다.






                                                                                                           

작가의 이전글 교육학 선생님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