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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Oct 03. 2023

술은 좋아하지만 회식은 싫어합니다.

회사에서는 일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야 혼자 일하고 회식할 일은 없으니 다행이지만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학교라는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는 회식의 횟수가 덜하다지만, 난 그 덜한 회식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일단 회식으로 인해 내 생활 루틴이 무너지는 게 싫었다. 합리적이진 않아도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루틴이 있다. 몇 시에 퇴근하고 몇 시에 저녁을 먹고 몇 시에 씻고 몇 시에 자야 하는 루틴 말이다. 회식이 있는 순간 이 모든 루틴이 다 어그러진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잠자는 시간이 늦춰지면 그다음 날 그게 그리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로 회식을 주도하는 입장이 아닌 준비하는 입장에서, 주도하는 사람들은 왜 그리 회식을 좋아하는지 몇 번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조금씩 이유는 달랐지만 공통적이었던 이유 하나는 친목 도모였다. 그것도 나는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던 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회식을 하면 친해지게 되는가였다. 술을 마시니까 분위기는 좋아 보여도 다음 날에는 다시 어색해지던데. 어차피 친해질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하던데 굳이 회식 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친목을 강요당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회식에 진절머리가 나서 마지막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웬만한 회식자리는 대놓고 피해 다녔다. 술 못 마십니다 또는 집에 일이 있어서요 라는 말이 항상 내 입에 붙어 다녔고 정시 퇴근 시간만 되면 일 들고 학교를 나와버렸다. 그때는 이렇게 일하다가 잘리면 다른 학교 가면 돼 라는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마음으로 일한 게 6년, 내 학교 경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학교든 회사든 본질은 일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러 왔으면 같이 일을 해야지, 친목도모와 같은 부차적인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학교에서 난 술 못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으레껏 참석을 권유하던 사람들도 두세 번 정도 거절하니 다음부턴 물어보지도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니 내 일 효율은 더욱 올라서 오히려 평가가 더 좋아지게 되었다. 술이 마시고 싶은 날은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걸로도 충분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적인 일에 집중하고, 사적인 영역은 서로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구적인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양에도 선공후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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