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기본 표현>
있을 때 잘하다
<응용 표현>
있을 때 잘해라 후회하지 말고!
매일 누군가를 만납니다. 약속된 만남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나의 활동반경 안에서 자연스레 만나기도 합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도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만납니다. 처음에는 예의를 갖추거나 체면을 차리다가도 반복되는 만남을 통해 무뎌지고 무심해지기 일쑵니다. 이 표현은 공적인 만남보다는 사적인 만남으로 관계된 사이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관계 탄성력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결속이 강화된 관계에서 기존과 동일한 긴장이나 에너지가 사라지게 되면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거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급격하게 권태로운 상태로 자리 잡게 됩니다. 관계의 변곡점이 되는 시점에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자가 외칩니다.
'있을 때 잘해!'
그러니 이 말은 있을 때 잘하라는 것은 단순히 상대에게 엄포를 놓는 것만은 아닙니다. 상호 간 관계에 있어서 경고등이 들어왔음을 바깥으로 알리며 함께 경각심을 느끼자는 권유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현재의 행동으로만 확인하겠다는 선포입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없을 때에는 잘하지 못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있을 때'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으로 확대 해석해야 합니다. '잘해'는 상대적으로 잘하라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하는 만큼이 10이라면 100, 아니 1000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는 기존의 에너지 이상으로 가동해야 한다는 공포감이 몸의 상태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죠.
II 잘할게요 곁에 있어만 주세요
가끔씩 세수를 할 때 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한참 동안 숨멈추기를 해봅니다.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막혀옵니다. 물을 마시던가 고개를 쳐들어 공기를 마시던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비로소 이 순간에 공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당연하고 흔한 그 공기 말이죠. 어푸어푸 하며 물속에서 머리를 꺼내 거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합니다.
-소중한 것들은 늘 내 주위에 나를 감싸고 있구나.
-방금 전 공기를 원했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관계도 그렇습니다. 공기처럼 보이지도 않고 늘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당연하게 지속되리라는 착각마저 합니다. 가끔씩 살피거나 재인식하지 않는다면 대야 속에서의 숨 참기처럼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지금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잘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