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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7. 2022

나의 초능력들 5

모으기 : 몸과 시간의 영원을 꿈꾸는

기억을 대신해 줄 무엇이 필요했던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을 능력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좋은 의미로만 쓰인다. 실패하는 능력, 지는 능력, 못하는 능력 이란 말은 없다. 그저 무능이라고 부른다. 과연 생산적이지 못한 능력, 누구도 욕망하지 않는 능력은 모두 가치가 없을까. 이제부터 나의 부정적인 능력, 위대한 무능력을 고백하며 능력의 범주로 편입해 보련다. 


나는 모으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우표 수집, 학용품 모으기를 즐기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희귀책과 잡지 모으기, 세계 각국의 화폐수집, 와인 모으기 등등으로 옮겨가며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모으며 정리하는 것이 소소하게 흥미로웠고 문제없어 보였다.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숙하고 고상한 취미 같아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 병적인 모으기 취미는 저장하기로 개념을 넓히며 전혀 수집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품목까지 늘어가기 시작했다. 전시장에서 가져온 팸플릿은 언젠가 내 공연 리플릿 디자인할 때 참고가 될 듯해서 못 버리고, 음료수 한 병 사고 받은 편의점 영수증과 각종 이면지는 언젠가 작은 메모를 할 때 뒷면이 요긴할 듯해 못 버리고, 철 지나고 목이 늘어난 옷들도 언젠가 한 번쯤은 작업복으로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못 버렸다. 그야말로 저장 강박증 같은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좁은 내 방은 더 좁아져서 모아둔 것들이 주인이 되고 나는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버리지 않아서 가끔은 비용이 절약된 적도 있었지만 상당 부분 정작 필요로 할 때 찾을 수 없어서 또 구입을 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은다'

소리를 내 보니 코끝이 살짝 당기며 입모양도 안으로 동그랗게 모으는 느낌이다. 글자 소리와 의미가 닮은 재미있는 말이다. 모을 때의 심정은 이러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연이 있고 내 손에 쥐어질 때 어떤 상황이든 발생한다. 거저 주어져도 의미가 있다. 아니 없더라도 붙일 수 있다. 그냥 당장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이 죄스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낭비 같다고 여긴다. 대체로 이렇게 충분한 저장 이유를 가지지 않는 것들은 쓰레기와 가깝다. 예쁘게 놓아둔다고 쓸모가 있는 물건이 되지는 않는다. 이때부터는 모으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능력이 된다. 요즘은 하나를 들여놓으려면 하나를 내다 버리는 것으로 나만의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물건을 구입할 때 종이영수증은 조금 궁금하지만 될 수 있으면 발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1년 동안 안 입은 옷은 내가 100살이 되어도 안 입을 옷이라고 판단해 과감하게 내다 버렸다. 구멍도 안 났는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모으는 능력을 고사시키고 있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무엇이든 하찮은 물건도 의미를 붙여 내 주위에 모아두는 것이다. 애착, 미련, 대비, 활용, 연결 등 아무리 좋은 말들을 붙여주어도 남이 보면 구질구질한 버릇에 불과하다. 나의 모으기 욕망을 마냥 거세시키려고만 말고 공간을 점령하지 않는 무형의 것으로 전환한다면 어떨까. 요즘은 나의 수집능력도 메타버스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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