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12. 2022

나의 초능력들 50

간절이라는 고질병 : 나를 치열하게 사랑하는 다른 명령어

간절함은 형용사가 아닌 동사


나는 앓고 있다.

간절이라는 몹쓸 병에 걸려 있다.

이렇게 고약하고 지독한 병은 처음이다.

다른 질병은 진단도 하고 처방도 가능하지만 '간절'이라는 병에 걸리면 대책이 없다.

온몸으로 받아 안고 스스로 다스릴 뿐이다.


간절하다의 형용사의 앞 두 음절 '간절'은 한자어다.                               

懇切 정성 간 끊을 절

앞부분의 정성 간은 마음 심 위에 간 豤 자가 얹어져 있는 형상이다.

豤 은 씹을 간이다.

돼지가 땅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씹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를 상상해 보자면, 참으로 우악스러우면서 무언가에 깊이 심취해 있을 한 짐승이 그려진다.

그것을 나에게 옮겨 적용해보면, 정성을 다해 나의 심장을 씹고 끊어버릴 정도로 지성을 다한다는 말이 된다.

간절은 이토록 치열한 단어이다.


우리가 간혹 사용하는 말 들 중에서-                      

간청懇請

간곡하게 요구할 때에도 심장을 씹고 끊어낼 정도의 절박함이 있어야 할 것이고

                             

친절親切

매우 친근하고 다정한 모습 또한 자신의 느슨한 마음을 절도 있게 고쳐 세우는 태도의 극진함이 있어야 한다.


그 극한의 두 글자 간懇과 절切이 만난 단어가 간절이다.

그래서 간절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전의 나로부터 완전히 변모하겠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나의 간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금 이곳 밖에는 발 디딜 곳이 없다는 처절함이 매 순간의 허기를 부른다. 주린 배를 채울 먹잇감을 구하러 멀리 갈 여유가 없기에 발 밑의 딱딱한 땅을 맨 손으로 파헤치고 먹거리가 될 만한 가능성이 0.000001%라도 있다면 코에 대고 맡아보고 혀 끝에 대고 맛을 볼 것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알면서도 목구멍으로 넘길 것이다. 살아 있다면 다행이고 쓰러진다면 운명이다. 나는 자주 땅을 파헤친다. 아스팔트가 있으면 머리로 들이박고 균열을 내서라도 바닥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이를 반복하는 것은 나를 더 이상 안전한 곳으로부터 구해줘!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을 사랑한다. 간절이라는 나무의 가지에는 무수한 가능성의 열매가 열릴 테니 말이다. 그 맛과 향은 늘 상상 그 이상의 만족을 내게 안겨준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자주 간절해지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감기보다 나를 흔들어 놓고 코로나보다 나를 위협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백신도 없고 예방약도 없으니 고질병처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나로부터 이 한 줌의 '간절'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부터 나의 정신적 시한부는 시작된다는 점이다. 서서히 막연하게 외부에 의해 원치 않은 방식으로 죽어가지 않기 위해 지금 확실하게 내 안에서 이전의 나를 죽이는 것이 간절함이 아닐까.

















이전 09화 나의 초능력들 4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