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적고 나니 글문이 탁 막힙니다. 하늘을 봅니다. 날씨 이야기는 편지를 쓸 때 물꼬를 트기 좋은 빌미입니다. 가을 하늘이 한 뼘쯤 높아졌다고 폼을 잡았습니다. 서로가 통화였다면 식사를 했냐고 멋없이 말문을 열었을 텐데 편지에서는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고 보니 대화는 주로 기분을 전하고 편지는 늘 마음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이 달이 뜨면 너무 말랑해지곤 했지요. 밤새 그대 떠올려 고이 적고 아침에 다시 읽으면 제 낯이 화끈거려 깊은 서랍에 넣어두고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어찌나 많던지요. 뜨거운마음은 박제할 수 없어요. 용기 내어 보내기로 작정하고는 우리만의 약속을 했지요. 밤 편지는 푸른색 봉투에 넣어 보내고 반드시 깊은 밤에 읽는 것으로 말이죠. 보낸 이의 순정이 더 이상 민망하게 읽히지 않을 테니까요. 같은 조건이 된 거예요. 과거의 내가 말할 때의 감정 톤과 현재의 그대가 듣는 감정의 어조가 얼핏 유사해졌으니 다행입니다. 눈치챘겠지만 그대에게 쓰는 편지는 연필로 쓰지 않습니다. 한 번 쓰고 나면 지울 수 없는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쓰기 좋아해요. 뱉고 나면 고칠 수 없는 말처럼 써 내려가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더디게 더디게 한 자 한 자 눌러씁니다.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마주 앉아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의 환각을 느끼고 자꾸 낯선 이야기로 데리고 가는 환상을 합니다. 그곳이 예정되거나 계획한 적이 없어서 편지를 쓰는 날은 그대와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곤 했답니다. 몇 장을 빼곡하게 적고 나면 창밖에 아침이 도착해 있습니다. 미완의 둥그런 태양은 제 마음과 닮은 듯 수줍기만 합니다. 늘 마지막 인사는 아이러니 자체입니다. 잘 가라는 말보다 내게로 잘 오라는 말의 다름 아님입니다. 편지지를 접는 방법을 백만 가지는 연구한 듯합니다. 그냥 3등분은 공문서 같아 내키지 않습니다. 기하학적으로 접되 대칭이 아니어야 합니다. 완성된 상태가 봉투 크기의 2/3 이하가 되어도 볼품없습니다. 너무 접어서도 너무 접지 않아서도 안됩니다. 우표를 봉투의 이마에 붙이고 나면 굳이 빨간 우체통을 찾아 헤맵니다. 우체통에 고개를 숙이고 입구 뚜껑을 밀면서 편지를 넣을 때의 묘한 기분은 우체국 창구에서 보낼 때와 사뭇 다릅니다. 마음을 전할 때에는 최대한 아날로그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를 버리지 못하나 봅니다. 보낸 이의 마음도 귀하게 이렇게 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흘러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체통의 둥그런 몸체처럼 내 마음도 동그랗게 그대에게 던져지고 나면 전달되기 전까지의 몇 날은 두근두근입니다. 그날들이 참 좋습니다. 자! 이제 편지를 다 썼으니 부치러 나서야겠습니다. 오늘은 낮에 썼지만 푸른색 봉투에 넣었습니다. 벌써부터 답장이 기다려집니다.그대도 저와 같은 마음인지요?
추신 ♡ 그대에게 처음 고백하건데 저의 초라한 능력은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펜으로 꾹꾹 눌러 손편지를 보내는 일이랍니다. 그것이 구태의연하고 촌스럽고 느리더라도 이해해 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