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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10. 2022

나의 초능력들 48

진부함으로부터 도망가기 : 여전히 부정성과 결탁해야

낡은 것보다 나쁜 진부함이여!


썩은 것을 늘어놓았다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부패되어 고약해진 냄새에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진부하다는 것은 어떤 흐름의 리듬을 놓쳐버린 낡음의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한을 넘겨 방치된 것을 초월해 부패하며 나쁜 미생물의 번식이 왕성해지는 상태다. 진부는 돌봄을 멈춘 결과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늘 환영받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진부한 것은 늘 비난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진부하다고 반응을 보이는 대상들은 대체로 정체되지 않을 기대를 가지는 상황과 상태들에서의 존재들이다. 길가의 돌멩이를 보며 진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돌멩이를 가져다가 다른 목적으로 배치했을 때 진부하냐의 판단 대상으로 옮겨간다.


진부함은 대상의 문제인가 관찰자의 문제인가. 가까이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보다도 혼자 쓰는 글이 진부해지기 쉬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지금 이 글이 진부한가를 놓고 볼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주관적인 관점이 수도 없이 많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기준은 이러하다. 상투적인 표현들로부터 얼마나 자주 벗어나냐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뻔하고 익숙한 문장을 만날 때 진부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언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도 문제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의 독자의 마음 상태가 읽기 전의 그것과 동일하다면 진부함에 가까운 글일 가능성이 높다. 글 쓴 이만의 독특한 시선과 논리, 철학이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진부함은 횟집에서 냉동된 생선을 해동해 내놓은 것과 같다. 한때는 신선했을 것을 고스란히 현재에 다시 선보이는 안일함이다. 쓰고 있는 시점을 훌쩍 뛰어넘어 미래의 읽고 있는 어느 날에도 꿈틀거리고 있어야 진부함의 늪에 빠지지 않는 글이 된다. 늘 고민한다. 내가 가진 진부함을 걸러낼 필터의 신선함을 갈구한다.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정교하고 개성 있는 필터를 나는 가져야 한다. 아니 날마다 교체하고 교체해야 낡지 않는다. 기계가 아닌지라 동시성이 불가능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싸워야 하고 이질적인 것들과 자연스럽게 융합해야 한다. 익숙한 것들끼리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한 발자국도 생기 있게 나아가게 하지 못하는 덕분이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진부함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이다. 그것의 표적은 나로도 자주 향하기에 나의 결과물을 불평하거나 불편해하기도 한다. 오늘도 이에 자유롭지 못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책을 하고 있다. 진부함의 반복이여! 진부함의 고질병이여! 나의 날 것들은 자주 부패하고 자체로 신선도를 충분한 시간만큼 유지하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기교의 방부제를 첨가하진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긴장의 비법들을 독서와 사색으로 찾아내거나 발명해 낼 참이다. 될 수 있으면 이 생애 안에 해결하고 싶고 결판내고 싶다. 세상의 어떠한 글감도 그 자체가 진부한 것은 없다. 그저 나의 진부한 시선과 게으른 감각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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