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 바닥으로 흐르는 연기
내가 그랬잖아 그림자 짓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사물이 이토록 버텨낼 수 있는가.
그의 꿈을 이렇게라도 토해내지 않는다면 어찌...
때로는 모락모락 연기처럼 그림자가 피어오른다.
우연히 그것을 보다가 사물이 성장하는 줄 알았다.
사물의 나이테는 날마다의 그림자를 겹치면 나온다.
우리는 가끔씩 착각한다. 그림자가 빛의 산물이라고.
사물은 빛이 없어도 그림자를 낳고 키우고 죽인다.
빛을 통해 아주 조금씩 우리에게 엿볼 기회를 줄 뿐.
그림자로 온통 겹쳐진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빛에 덮인 사물이 그림자를 뱉어내며 아우성 한다.
사물이 그림자 가지고 말을 건네면 생물이 되는 것 같다.
사물은 그림자로 귀엣말을 한다. 간결한 외마디로!
사물의 그림자가 생물의 그림자를 흉내 낼 때가 있다.
사물이 하는 유일한 유머와 장난기일 것이다.
생물의 복잡함도 그림자에서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사물과 생물 사이에는 그림자가 교집합이 된다.
그림자는 사물의 진실이자 확장 가능성의 그래프다.
그림자는 사물에 묶인 끈의 정처 없음이다.
그림자를 결정짓는 것은 태양이 아닌 바닥이다.
그림자가 굽었다면 빛이 굽은 것이 아니다.
유발자가 책임지지 않는 유일한 사건은 그림자뿐이다.
사물 뒤에 숨는 것은 그림자 품에 안기는 일.
그림자와 내 몸의 모양을 일치하면 사물이 된 기분.
사물이 되었다고 그림자가 나를 닮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림자는 사물의 차지. 나는 사라진다.
내 그림자마저 사물에게 주고 나면 잠시 자유롭다.
그림자 없는 인간은 유령이 아니던가.
내 것과 네 것이 불분명해질 때에는 내 것이라 우기지만
그림자만큼은 사람 좋게 양보할 수 있다.
그림자를 그림자에게 넘겨주는 순간 그림자놀이는 시작!
나의 초라한 능력은 사물의 그림자들 속에서 노는 것이다.
내 그림자를 겹치기도 하고
내 그림자를 건네기도 하고
내 그림자를 지우기도 하고
멍하니 그림자들을 바라보다 그림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림자는 그려낸 사물의 것인 줄도 모르고
그리는 자의 것으로 착각해버린다.
그림자가 없는 날이면
기다란 막대기를 구해 사물 옆에
자그마한 그림자를 그려 넣어 준다.
그리고 사물을 쳐다보면 사물이 왜 여기에 있는지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