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17. 2022

나의 초능력들 55

목소리 : 말하는 지문, 들리는 홍채

지금 너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게


-너 무슨 고민 있지?

녹음 부스에서 연기를 마치고 나온 제자에게 불쑥 말을 건넨다.

-아. 어떻게 아셨어요?

연기할 때와는 다른 얼굴로 속내를 들킨 아이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 같은 물음을 던진다.

-돈 문제지?

레슨을 하기도 전에 제자의 갑작스러운 고민상담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그 친구의 가정사를 꿰차고 있는 상태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나의 초라한 능력은 적어도 두 번 이상 들은 목소리에서 그 사람을 읽어내는 것이다. 거창한 능력은 아닐터인데 신기할 수도 있어 그 사소한 비밀을 밝히려 한다. 목소리에는 수많은 정보가 녹아 있다. 그의 습관, 과거, 생각, 지적능력, 버릇, 정서, 성격, 트라우마, 성향, 현재, 의지, 욕망 등 무수한 삶의 궤적들이 그 흔적들을 목소리에 새겨놓는다. 마치 내 몸을 순환하는 혈액에 나의 중요한 몸의 정보가 담겨 있듯이 말이다. 가장 평이하고 편안한 상태에서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입력해 둔 후에 그다음 감정 기복이 있는 상황에서의 목소리와의 간극을 비교해 기억해 둔다. 매번 목소리는 심리 상태와 몸의 상태에 따라 미세한 변화를 보이는데 이러한 목소리의 변화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더하면 그 데이터의 누적은 기하급수적으로 해석가능수치로 전이된다. 이런 행위는 상대를 이용하려는 목적보다 이해하는 의지에서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공통된 패턴도 없고 예외도 무성한 이런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목소리만 잘 들어도 상대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떨리는 목소리, 먹먹한 목소리, 더듬는 목소리, 활기찬 목소리, 울먹이는 목소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피곤한 목소리, 해맑은 목소리, 거침없는 목소리, 주저하는 목소리, 수줍은 목소리, 당찬 목소리, 애교 있는 목소리, 든든한 목소리, 말수 적은 목소리, 느린 목소리, 유창한 목소리, 어른스러운 목소리, 따뜻한 목소리, 차가운 목소리, 웅얼거리는 목소리, 중후한 목소리... 당신은 어떤 목소리의 소유자인가. 내 목소리는 항상 타인의 귀에서만 정확하다.(녹음된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한 적 있는 우리 아닌가!) 그래서 나의 목소리는 유일하게 나만 낯설고 어색하다. 목소리는 타인을 위한 나의 선물이고 타인에게 내미는 악수이다. 내 목소리라고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를 목소리로 기억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운 이의 얼굴은 가만히 떠올리면 떠오르지만 목소리는 쉽게 기억나지 않는다. 목소리는 만져지지 않고 맡아지지 않기에 어디에 담아둘 수도 없다. 녹음을 해두어도 그의 한 순간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지금 지나면 내 앞에 마주한 소중한 이의 목소리는 휘발되고 만다. 이 순간 쉽게 소진하기에는 아까운 이들의 이야기들을 목소리를 통해 당연하게 받아 흘리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깊게 남지 않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