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공부
어질러진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하면 할수록 어수선해지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간의 정리는 채워진 것들을 수납하기 위한 가구를 마련하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건 잘못된 정리방식이었다.
공간의 매력은 잘 비워냄에 있음을.
강력한 인테리어는 과감한 여백을 채워짐에서 구해내는 것이라는 비밀을.
무언가로 채워서 허전함을 메우는 것은
공간의 장점을 가리는 어리석은 욕심의 감각이었다.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숨겨놓는 정리에서
공간의 중앙에 배치하거나 드러내고 그렇지 못한 물건들은 모두 폐기하는 정리로 바꿨다.
각각의 사물에 연결된 감정들을 제거하자 버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쉬울 것 같던 공간은 작은 조명으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곳을 애착하게 되고 누군가를 무작정 초대하고 싶어졌다.
우아한 찻잔이 공간과 춤추었고
사소한 소품이 공간과 입맞췄다.
사무실에서 사물은 사라졌는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었다.
II 잘 비워내는 것이 잘 채우는 것보다 중요해
무언가를 배울 때에도 비움의 역설이 적용된다.
부족해서 배우는 것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채우는 것이 배움의 궁극이라 여기는 착각에 빠진다.
적어도 시낭송에서 나의 태도는 채우기를 경계한다.
이미 세상에는 온갖 지식과 방법들을 동원해 꽉 채워 멋들어지게 하는 낭송들이 즐비하다.
나의 시낭송은 바보같이 거꾸로 접근한다.
평범한 목소리를 애써 꾸미지 않기
일방적으로 주장하듯 낭송하지 않기
기교와 멋 냄을 최대한 지우기
시인의 의도 따위는 고민하지 않기
나의 이야기와 시의 접점을 찾아가기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가진 한계로부터 하나씩 지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은 나의 하찮은 낭송을 들어줄지 만무하기에 내 입장만 말하자면,
내가 다시 듣고 싶은 낭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심심할 정도로 담백함으로 나아가려 했다.
III 공간도 낭송도 자꾸 비워야 다른 새로움으로 채워진다
https://youtube.com/watch?v=EJgayXZDQ0I&feature=shares
빈자리가 필요하다_오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