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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Feb 03. 2023

어쩌다, 시낭송 026

시간 죽이기

I     우선 앉았다


여유 있게 약속장소로 가다가 도중에 카페에 들어갔다.

1층에 자리가 없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빈자리가 없어서 3층으로 올라갔다.

창가에 나란한 다섯 자리 중 가운뎃 차리가 하나 비어있다.

자리가 있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다.

아이팟을 끼고 있어서 살짝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리켰어야 했다.

자리를 잡고 나니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차를 주문하고 기다렸다가 들고 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리를 맡아줄 동행인도 없고 맡아둘 소지품도 없고 아이팟을 끼고 있는 옆사람에게 어깨를 두 번 가볍게 두드린 후 그가 아이팟을 뽑으며 내게 보여줄 반응도 낯설고 거절 같은 무표정도 두렵고 마치 관심이라도 있어서 말을 건넨 오해도 받기 싫고 그와 같은 음료를 시킬 건데 혹시라도 같은 걸 알게 되어 내 팔뚝을 꼬집으며 찌찌뽕 할까 봐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각선으로 오른쪽 뒤편에서 나누는 세 명의 여인들 대화가 흥미진진해서다.

잠깐인데 각각의 엠비티아이와 서로의 관계와 최근 집안의 우환들을 파악할 수 있어서 난감하다.

서로는 자신의 관심사를 보고하듯 쏟아내고 이야기의 줄기는 세 갈래로 오버랩되고 귀도 입으로 바뀌었는지 듣지도 않고 아홉 개의 입이 열린 것 같아 흘깃 돌아보니 세 명이 분명하다.

모두가 옳은 것을 말하는데 자신의 입장에서 가공한 이야기로 조율을 해가며 첨예하게 좁혀가는데 목소리는 배려가 줄고 커져 간다.

창밖으로 노란 건물 너머 파란 하늘이 이국적이다

아래로 전신주의 어지럽게 이어진 전깃줄이 세 여인의 대화처럼 산만하고 길게 늘어지고 있다.



II    이젠 가련다


이젠 약속시간이 임박해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간을 죽이다가 이제는 조금은 살려서 약속장소까지 가야 한다.

약속시간 늦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하기에...




III    실없이 킬킬대는구나


https://youtube.com/watch?v=W6w4cdIiJzM&feature=shares

농무_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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