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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5. 2023

어쩌다, 시낭송 076

지속적인 글쓰기의 부작용 기록 중입니다 

I    잘 물어볼 줄 알아야 잘 쓴다


글쓰기도 말하기도 번잡하고 귀찮은 날이다.

내가 그동안 글쓰기에게 해준만큼 글쓰기가 오늘 같은 날에는 한 번쯤 내게 무언가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평소보다 냉정하면 더 냉정했지 한치도 양보하는 배려가 없다.

차라리 저 끊임없이 명멸하는 커서는 사라져 버려라.

이쯤에서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일기 같은 푸념 따위가 무슨 글이며, 꼭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쓰는 것이다.

날마다 글쓰기를 하는 것의 장점을 쌓아가는 것보다 날마다 글쓰기를 하는 것의 치명적인 단점을 만날 때 기록하는 것을 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지속적인 글쓰기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넘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를 글로 남기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

내가 그 첫 발자국을 내딛겠다.

자주 내게 오는 글쓰기의 피로감, 매너리즘, 부작용, 쓸 거 없음의 반복 등은 오히려 유용하다.


쳇 GPT를 만나면서 노하우의 시대의 종말을 실감한다.

경험을 통해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이가 능력이었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

노하우에서 노퀘스천으로 옮겨가고 있다.

좋은 질문을 가진 자가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쳇 GPT는 항상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라도 답해주겠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질문의 빈칸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궁금한 것이 없거나 질문을 하고 싶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이런 첨단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가장 디지털한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다.

호기심이 소멸하는 순간 글쓰기는 멈춘다.

질문의 문장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순간 글쓰기는 멈춘다.

내가 글을 쓰지 않은 날에는 질문 하나 만들지 못한 날이 되는 것이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단순한 행위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나를 불확실한 내일로 온전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옮겨놓는 유일한 일이 글쓰기다. 




II       글쓰기는 부재와 실재 사이에 있을 때 치열하다


우울한 날에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보고 싶다.

무언의 몸짓, 암전 사이에 떠오르는 대사 자막, 웃기면서 슬픈 스토리, 등장하는 아이와 여인들...

채플린의 영화는 채플린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채플린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부재가 가져다주는 존재감.

어쩌면 모든 명작은 그것의 창작자가 사라진 이후에 불후의 명작으로 기억된다.

누구나 현상에는 소홀하며 미지에는 너그럽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거리조절에 실패한 결과다.

모든 갈등의 해법은 서로에게 부재를 솔루션으로 건넨다.

인간은 보는 순간 흐트러진다.

그것이 신일지라도.




III    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좋아해


https://youtube.com/watch?v=XFnpcRFjAVs&feature=shares

그때 왜_김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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