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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18. 2024

늙음과 낡음

0676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볕 가득 쏟아지는 오후 창가 가까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


남자는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입 안에 굴리고는 찻잔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요즘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너무 낡은 것 같아요.


순간 여자는 흐르는 음악에 몸을 띄운 터라 자신이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 여겨 반문하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어쩌면 거울이 늙은 탓일지도 몰라요.


남자가 늙음과 낡음을 바꿔 말하는데 여자는 듣기에 이상하지 않았으나 의도가 궁금해진다.


-낡은 것들은 낡을수록 자신을 곤두세우고 늙은 이들은 늙을수록 몸을 눕히는 것 같아요.


여자는 글자 모양이 의미를 품는다고 덧붙인다.


차라리 모를 때에는 상상을 펼치는 게 본질에 가까워진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낡은 모든 것들에서는 '아'하는 소리가 늙은 모든 것들에서는 '으'하는 소리가 나니까요.


남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까닭을 말한다.


구분은 경계를 조롱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모른다.


-어차피 늙음이나 낡음은
모두 같은 'OLD'예요.


남자는 꼰 다리를 바꾸며 마지막 한 모금을 턴다.


마침 창에는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오르간 협주곡이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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