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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06. 2024

불편한 재회

0755

어느 시인의 추모 10주기 행사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시인의 생전에는 스치듯 한차례 한 공간에 있었던 적이 있었음을 오래 지나 한 신문에 난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인의 사후 4년 뒤 시인을 추모하는 모임의 의뢰로 시를 묶어 공연하는 무대를 연출하는 인연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때는 시인을 위해 나의 유튜브 채널에 일주일 동안 그의 시를 낭송해 올리는 정성을 보인 적도 있다.


꽤 긴 기간 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젊은 시인들을 다루는 방송과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 의도치 않게 적지 않은 문인들과 술을 나누거나 정을 나누거나 말을 나누거나 흠을 나누기도 했다.


나의 보기와는 달리 내성적인 성질 탓에 많이 상처받고 틀어지고 멀어지고 밀쳐지고 슬펐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자리에 불편한 얼굴들이 보인다.


서운하고

섭섭하고

속상하고

미련스러운 마음들이 뒤엉켜 잘 차려진 음식들이 코로 들어가는 줄도 몰랐다.


코로 씹다가 트림을 하고 게워내다가를 반복한다.


코에는 질긴 음식을 찢을 치아도 없고 산해진미를 구분할 혀도 없어서 더 슬펐다.


잘 정렬한 초밥들의 자태를 보며 옹졸해지고 완고한 마음을 자책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한 돌부리를 차며 생각한다.


죽은 시인보다 나의 낡은 생각과 고루한 마음들을 죽이고 추모하는 것이 더 시급하구나.


장마가 잠시 머문 사이 내 안에는 태풍의 눈이 잠시 껌뻑이고 지나갔다.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이리도 고통스럽고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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