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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2. 2024

분리수거함

0761

자꾸 바래는 글을 쓰고 있어.


잉크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거야?

그래, 그게 가능하더라.

내 글을 모아다가 착즙기에 넣고 짜보았는데 잉크는커녕 아무것도 없더라.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장담했는데 결국 피 한 방울도 묻어 나오지 않더군.

이런 글이 세상에 굴어 다닐 이유가 있을까.


자꾸 바라는 글을 쓰고 있어.


고개를 쳐들고 별을 찾다가 헤매는 시선이 손끝에서 발화하네.

아직! 도착 중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쓰다가 부러운 이야기로 넘어갈 때 딸꾹질이 나더라.

자꾸 걸음을 바꾸다가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텐데...

그래도 건진 건 리드미컬한 갈등들이었지.


자꾸 바보 같은 글을 쓰고 있어.


한 손을 내밀었는데 머리는 왜 숙인 거야?

미안하니까 어제 받은 문자들을 가지고 노래를 지었구나.

어설펐던 가락이 춤과 곁들이니 그럭저럭 봐줄 만하군.

잘 나눌 수 있는 자가 잘 노닐 수 있지.

이제부터 보이지 않게 흩어진 것들을 분리할 시간이야. 


분리의 방식을 기술하자면,


우선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을 무한대로 나눌 거야.

나눈 것들은 분리하기 전으로 돌이킬 수 없도록 이름을 달아주고 서로 연결할 수 없는 것끼리 짝을 지어주고 그 사이에 분리대를 설치해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통제할 거야.


결국 분리는 서로 나눠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니까 이별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떨어졌을 때 그 충격이 크지 않도록 사려 깊게 다룰 필요는 있어 보여.


특히나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이 아닌- 것들의 분리이다 보니 예상보다 다루기가 버거울 수도 있어.


그래서 한 데 거두어 갈 수 있도록 수거함을 주문해 놓은 상태야.


수거함의 모양을 소개하자면,


먼저 위아래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 주된 특징이야.

보이는 것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아두는 함도 통풍이 중요해.

보이는 사물들은 붙여 놓으면 사달이 나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은 분리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분리는 떼어놓는 것이고 수거는 모아두는 것이라서 분리수거를 할 때에는 음악이 필요해.

분리할 것을 모으고 모을 것을 떼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아무튼 글 쓸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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