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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21. 2024

문을 여는 법

0893

길을 가다 돌아보는데 문이 쫓아오는 거야


문이 벽이 아닌 줄은 문고리를 보고 안 거지


문을 보면 열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잖아 그래서


문고리를 잡고는 열려다가 잠시 고민에 빠졌어


밀어서 열까

당겨서 열까


우선 밀어보았지 닫힌 건지 꼼짝을 안 하네

다시 당겨보았지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아


문을 볼 때마다 질문 앞에 선 기분이야


왜 열려고 하는가

문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문을 열 줄 아는가 문을 열 줄 아. 는. 가?


문은 늘 여는 것만 궁금해할까 닫는 것은 당연한가


어쩌면 문을 여는 법은 문을 닫는 법의 반대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온통 여는 것에만 집중할까



문이 여럿이 쫓아와서는 하나씩 근엄해지지


문끼리 열리는 방향이 같아지면 싸우기도 해


문이 관대해지는 유일한 때는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이지 잡숩겠다는 포즈인데 길을 터주는 형세이고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깜짝 이벤트라고나 할까 문은 늘 뒤춤에 얼굴과 다른 공간을 숨기더라


문은 가두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니까 조심해야 해


밤새 날 쫓아오는 문들을 달래느라 손목이 뻐근해


문과의 포옹은 악수할 때처럼 손을 내밀고 당기거나 돌리거나 미는 거니까 눈치가 필요해


문은 열고 나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꼬리가 잘린 적도 많았지만 도마뱀이 된 적은 없었지 용케도


문은 벽을 꿈꿀까 담을 꿈꿀까 하다가 거울이 되지


아무튼 밤새 문들이 쫓아와서 잠을 깨느라 혼났네


따돌리느라 나무에 올라가 물구나무를 서서 보니 문은 곰이 되어서 죽은 척 하다가 부엉이가 되었지


내 배가 볼록한 건 얼굴만 정상으로 돌아와서 그래


부엉 부엉 울음소리 참으며 배가 자꾸 부엉부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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