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다는 백로입니다. 날이 제법 선선해지나 싶었는데 다시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이네요. 뭔가 아쉬운 게 남은 것인지 여름은 아직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가을이 더디게 오기를 바라는 듯, 꼿꼿하게 버티고 서있는 무더위를 보며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2023 여름, 선생님은 일곱 번의 토요일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던 빗줄기가 쏟아지던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지요. 일곱 번의 추모 집회를 위함이었습니다. 오랜 과정에 지칠 법도 한데 7차 추모 집회는 전국 각지에서 30만 명이 모였다고 하지요. 단체 버스 600대, 제주발 비행기 2대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어마무시한 인파가 집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는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집회의 정석'이라는 유례 없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요.
어떠한 분란도, 사고도 없이 일곱 번의 추모 집회를 치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수고를 감당한 이들의 땀방울이 담겨 있습니다. 집행부, 질서 유지인, SNS 관리 담당, 회계 담당, 버스 대장 등으로 땀흘린 선생님들, 그리고 집회 참가자 선생님들까지… 따로 또 같이 자리를 일구며 마음을 모아간 여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서울과 군산에서 또 다시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연달아 들려오는 비보에 숨이 턱 막히고, 통탄스럽습니다. 힘이 빠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지나온 시간을 복기해 봅니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바삐 돌아가는 매일의 한조각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를,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면서요.
종각역~을지로입구역 및 청계천 일대에 약 40,000명의 선생님이 모였습니다. 교육부를 향해 교사 생활지도권 보장을, 국회를 향해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을 한목소리로 외쳤는데요. 이날도 역시 선생님들은 ‘교사의 억울한 진상규명 촉구', ‘아동복지법 17조 5호 개정', ‘일원화된 민원창구 마련', ‘수업방해 대응체계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약 50,000명의 선생님이 국회의사당 앞 대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국회의 행동을 촉구하는 슬로건에 맞게 장소가 국회 앞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억울한 교사 죽음 진상규명과 아동학대 관련법 즉각 개정에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이날은 교사의, 교사에 의한, 교사를 위한 추모 집회 헌정곡 [꺾인 꽃의 행진]이 처음 울려 퍼진 날이기도 했습니다.
5차 무법지대에서 교육 안전지대로, 국회는 행동하라 집회 기사 보기
5차 집회에 이어 국회의사당 앞에 약 60,000여 명의 선생님이 집결하였습니다. 앞선 다섯 번의 집회와 매한가지로 교사 죽음 진상 규명을 힘 실어 외쳤고, <현장의 목소리 반영하라!>는 집회 슬로건에 맞게 현장 요구 즉각 반영을 외쳤습니다. 또 전국 각지에서 자유 무대 발언에 오르신 선생님들을 통해 현장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자유 무대에서 발언된 경험담들은 비단 발표자 선생님 한 분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닌,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많은 선생님들이 겪는 일이기 때문에 눈물, 분노, 안타까움 등을 자아냈습니다. 동시에 한 번 더 굳게 연대할 수 있었지요.
6차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라! 국회 입법 촉구 추모 집회 기사 보기
7차 집회가 열리는 9월 2일은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이틀 앞둔 날이었는데요. 집회가 열리기 이틀 전, 서울과 군산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두 선생님의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약 30만 명의 선생님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습니다. 이는 앞선 여섯 번의 집회 참여자를 모두 합산한 것을 뛰어 넘는 인원입니다. 7월 18일 이후 아직 변한 것은 없고, 오히려 두 분의 동료 선생님을 잃는 슬픔이 더해졌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국회 앞에 모일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선 여섯 번의 집회를 통해 차곡차곡 선생님들의 연대의 마음이 쌓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날 무대 앞에 걸린 두려움을 나아갈 용기로, 연대를 공교육의 희망으로라는 슬로건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선생님들의 결연함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7차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기사 보기
선생님, 이 거대한 물결의 시작은 믿을 수 없는 비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분노, 개탄, 억울함 등이었지만, 두 달여의 시간을 톺아보니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으쌰으쌰 학교&랜선 동료 선생님이 북돋아 주는 용기, 소속을 귀염뽀짝(?)하게 드러내는 깃발들의 유쾌한 향연, 든든한 동료의 존재감 같은 무형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네요.
비탄과 울분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그럼에도 용기와 희망으로 똘똘 뭉쳤던 여름이 가고 2학기가 한창입니다. 아직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네요. 큰 변화는 주로 더디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때에 불쑥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요. 일곱 번의 토요일, 거리에서 외친 바람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어서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아, 우리의 바람이 더디고 조금 느리게 올지라도 이번 학기 선생님이 계신 현장 가운데는 부디 작은 변화의 기쁨들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웃는 일이 하나 더, 하나 더 쌓여가면 좋겠어요. 오늘도 현장에서 애쓰실 선생님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곁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2023.09.06. 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며.
+ 번외
++ 또 한번 비보가 들려온 아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3.09.08
인디스쿨 김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