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우리 모두를 비통하게 한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 선생님과 관련한 공식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 학부모의 극심한 악성 민원에 괴로워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선생님이 떠나신 지 3주가 지나갑니다.
반드시 성역 없는 진상 조사와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번 일이 더욱 비통하고 참담한 것은 악성 민원, 수업 방해, 학부모의 교사 고소/고발 등 교권 추락과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 구조적 환경으로 인한 일이 이번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 서울 양천구, 부산, 인천 등 지역을 망라하고 어떠한 조치와 보호 없이 학생의 폭력을 맨몸으로 견뎌야만 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기사가 공분을 사기도 했었지요. 실제로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비슷한 고통을 경험하셨거나 경험하고 계시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교육 환경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책임감, 아이들을 향한 마음, 초심 등 스스로에게 교실과 교단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물으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오신 선생님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선생님을 지켜 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으나 같은 교사로서 조심스레 더듬어 헤아려 보는 선생님의 고통
그리고 뒤따라 오는 분노와 무기력감
소중한 동료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선생님들이 한분 한분 모이셨습니다. 선생님 및 일반 시민들은 서이초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추모를 이어갔는데요. 서이초등학교를 둘러싼 검은 추모 행렬과 화환으로는 선생님들의 비통한 마음을 다 대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주 토요일인 7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약 5,000명의 선생님들이 모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추모의 마음을 담아 검은 옷 검은 마스크 복장으로 모이셨는데요.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진상 규명 촉구" "교사 생존권 보장" "교사 인권 보장" "교권 수호" 구호를 두 시간 가량 외치며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의해 진행된 집회는 당초 200명이 모이는 것으로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으나 역시나 선생님들의 자발적 참여로 인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집회 구역이 네 군데로 늘어났습니다.
일주일 후인 7월29일 선생님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의한 집회는 계속 되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두 번째 집회에는 약 30,000명의 선생님들이 참여하셨는데요. 1차 집회 때처럼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 복장으로 모인 선생님들은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 "교사의 교육권 보장" "정상적 교육환경 조성" 등의 구호를 외치셨습니다.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선생님들은 3주째 집회로 모이셨습니다.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육권 확보 집회'에는 약 50,000여 명의 선생님이 모이셨는데, 지방에서도 약 3,000여 분의 선생님이 80여대의 버스를 대절하여 함께 참여해주셨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선생님들은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 "일원화된 민원 창구 마련" 등을 외치며 교육권 확보를 위한 대안을 촉구하셨습니다.
이미 교권 추락과 이로 인해 선생님들이 겪고 계신 무기력감과 우울감, 괴로움 등은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지키고, 동료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힘을 합하고 계십니다. 지금 선생님들이 공통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해결책 1순위는
아동학대법 개정과 비정상적 민원으로부터의 대응 시스템 마련입니다.
물론 고인이 되신 서이초 선생님 관련한 진상규명을 잊지 않았고요.
7월18일 이후 당국 및 각 시도 교육 관련 부서는 나름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새입니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각 시도 교육감은 여러 교사 단체 및 현장 교사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나름의 혜안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7월26일 인디스쿨 소속 선생님들과 교육부의 간담회가 있기도 했었지요.
선생님들의 의견을 십분 청취하고 발언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예비 살인자'와 같은 얼토당토 않은 발언과 연수 강화, 심리 상담 지원 등 엉뚱한 대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에 관한 철저한 진상 규명, 그리고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잘 만들어지고 정착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폭염과 폭우, 이상동기 범죄 등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게 하고 두려움을 갖게 하는 이상한 사회 이슈가 많은 올여름인데요. 뭐라 말로 정의하기 이상한 사회 한복판에, 한마음 한뜻으로 한목소리를 내시는 선생님들이 계심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2023 여름을 기억할 때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을 향한 진상규명이 명명백백 밝히 드러나 있기를, 선생님들의 요구가 반영되어 교육 환경이 좋은 쪽으로 개선되어 있기를, 그리하여 아픔과 슬픔 위에 무지개가 떠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하지만 기억하렴. 그러다 힘들면 꼭 이모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돼.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
[눈부신 안부] (문학동네, 백수린) 인용
2023.08.07
인디스쿨 김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