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인 성 역할 구분이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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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정치적이지 않아야 할 공간에서 정치가 벌어지고, 그곳에서 다시 역설적으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교황이 사망하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추기경들이 모인다. 추기경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그들 중 투표로 교황을 뽑는 모임이 '콘클라베'이다. 그 안에서도 언어가 통하거나 이념이 비슷한 사람끼리 식사하고 밀회한다.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종종 규칙을 어기거나 서로를 모해한다. 추기경들 사이에서 유력 후보들의 추문이 퍼진다. 그러다 외부에서 일어난 사고를 계기로 예상치 못했던 후보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2. 파고들기
콘클라베의 총괄을 맡은 로렌스는 여러 번 교황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로렌스는 존을 투표하겠다고 말한 다음 날 자신에게 투표한다. 다른 추기경도 초반에는 야심을 숨기지만, 나중에 모든 추기경은 교황이 되고 싶어 한다고 역설한다.
수녀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이어야 하고, 추기경이 되기 위해서는 남성이어야 한다. 구조상 여성은 교황 후보가 될 수도,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에 참여할 수도 없다. 영화에서 추기경 간에도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 의견이 양립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라는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명시적으로 인정받은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집단에서 평등의 구체적인 정의를 합의하고 있다. 이 영화는 평등과 관련된 담론에 파격적인 결말로써 의견을 제시한다. 마지막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몸에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동시에 가졌다. 그에게 직전 교황이 추기경의 자격을 부여했고, 동료 추기경들이 교황의 자격을 부여했으며, 신이 인간의 자격을 부여했다.
3. 질문
'직위를 가진 인간'에 선행하는 조건은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기에 앞서 인간 존재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추기경들은 누가 교황이 될 자격을 갖는지에 관해 자주 논쟁한다. 그러나 교회 내의 보수적인 성 역할과 관련한 논의는 금기시한다. 아이러니하게 교황으로 선출된 추기경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다. 이 같은 경우를 간성(間性)이라고 한다. 그는 남성으로 살기 위해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려다, 마음을 바꿔 신이 주신 신체를 변형하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 아마 교황직을 수행하는 데에 간성이라서 생기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교회 밖에서도 특정 성별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직장이나 가정에 잔재하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있지만, 시대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구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제3의 성을 논의에 포함하려면, 개별 인간을 특정 성별로 규정짓기보다 인간 자체로 보는 것이 유리하다. 양성평등을 넘어 모든 인간의 평등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분법적인 성 역할 구분이 유효한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고착된 고정관념을 어떻게 해야 떼어낼 수 있을까?
여담: 이 영화는 미쟝센이 훌륭하다. 붉은 색의 사용과 사물 및 인물의 배치가 좋았다. 지배적인 원색 사용은 엄숙하면서 편향적인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