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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Aug 15. 2021

성냥을 켜는 소녀.

열두 번째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

 프롤로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지요. 12월의 마지막 날. 그 밤에 소녀가 꽁꽁 얼어 죽어 갔다고요.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가냘프게 울어도 아무도 성냥을 사주지 않았다고요. 분명 그곳에는 소녀가 태운 성냥 재가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골목 어딘가에서 잠시 스치듯 본 듯도 하고, 못 본 듯도 한 소녀를 문득 기억하고, 소녀의 죽음을 애도했지요. 그날 밤, 그 거리에서 가엾은 맨발의 소녀를 만났다면 자신은 소녀를 위해 분명 성냥을 사주었을 거라고 믿었고요.


누군가가 말했어요. “소녀의 부모가 성냥을 팔아 오라고 매질을 심하게 했다는군요.” 소녀의 부모는 모든 비난을 감당해야 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말했어요. “우리는 그런 소녀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돼요.” 사람들은 한결같이 참 착해요. 참 한결같이요. 물론 아무도 그날 밤, 소녀의 죽음엔 직접적인 책임이 없고요.


 성냥팔이 소녀상이 세워졌고, 성냥개비와 양초가 한 묶음이 되어 팔려요. 12월엔 소녀의 죽음을 기억하며 모두 성냥을 사니까요. 성냥 사세요. 누군가는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성냥을 팔았고 성냥은 꽤 잘 팔렸어요. 어딘가에서 구슬프고 상냥한 미소를 배운 소녀들이 쏟아져 나왔고요. 12월엔 성냥 파는 소녀들도 예쁜 구두와 고운 옷을 입지요. 달디 단 친절을 먹지요. 모두가 풍성해졌으니까요.(어쩌면 누군가의 치아가 썩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성냥과 양초가 쏟아져 나오지만, 놀랍게도 성냥과 양초는 모두 각자의 집에서 잠자고 있어요. 세상은 늘 환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하니까요. 양초를 태울 한적한 시간도 없고요. 설령 누군가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보려 해도 이미 눅눅해진 성냥은 쉽게 켜지지 않았고요. 그래도 여전히 성냥을 파는 이들이 있고 성냥을 사는 이들이 있지요. 밤이 쉴 틈 없는 이곳엔 성냥이 그리 필요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불행했던 한 소녀를 기억하며 성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을 낼만큼의 동정심을 위안 삼아 하루를 살았고요. 그 성냥이 자신을 위해 진짜 필요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는 않았고요. 기쁘다 구주 오셨네.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고, 제 속의 어둠을 모두 빛으로 돌려주는 찬송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의 불빛은 사람들을 어둠 속에 홀로 두지 않았요. 빠르고 간편하게 원하는 종류의 빛에 간편하게 어둠을 맡기면 되고요. 그림자의 진짜 이야기에 대해선 침묵하기로요.

     

그러나 새해 아침 떠난 소녀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관한 이야기와는 그리 관련이 없지요. 소문과 사실, 그리고 진실 사이의 거리는 종종 동떨어져 있기 일쑤니까요. 굴뚝엔 아니 땐 연기가 나기도 하고, 땐 굴뚝의 재마치 없던 듯 사라지기도 해요. 전해 들은 자의 거울이 낳은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고요. 그래도 이야기는 전해오고, 누군가는 이야기에 살고, 더러는 이야기에 죽기도 하지요. 이야기가 살아남은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도 때에 따라 다르지만, 그 가운데 열두 번째 소녀가 들려준 그날의 노래를 들었어요. 어디까지가 진짜 그날에 관한 노래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요.( 첫째 소녀와 열두 번째 소녀의 거울추는 일은 당신의 몫이고요.) 다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오래전 소녀의 아빠가 만든 성냥개비요. 아빠는 이미 잊어버렸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녀의 기억 속에 있아빠의 꿈에 관한 이야기요.  

       

  사람들은 하얀 눈을 기억해도 땅에 떨어져 질척거리는 잿빛은 금세 잊지요. 순백을 사랑하는 만큼 순백의 기억만을 원하고요. 여기, 열두 번째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어요. 소녀는 더 이상 성냥을 팔지 않아요. 다만 어둠 속에서 홀로 성냥을 켤 뿐이지요. 소녀의 성냥 불빛은 너무 초라해요. 영원하지도 않고요. 다만 제 나름의 진실을 전할 뿐이라고 했지요. 그날에 관한 그저 그런 초라하지만 소박한 이야기라고요. 



열두 번째 성냥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


1. 혼돈


당신들이 생각한 만큼 아빠는 그런 악당은 아니에요. 성냥을 팔라고 매를 든 건 더더욱 아니고요. 오히려 거꾸로였지요. 성냥은 만든 건 아빠의 오랜 버릇이었죠. 아빠는 할아버지로부터 성냥 만드는 기술을 배웠어요. 전나무 향이 가득한 아빠의 성냥은 특별했어요. 성냥을 만드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기술에 감탄했지요. 아빠는 어깨를 으쓱했고요. 아빠는 최고의 비법은 영혼이고, 영혼을 담지 않으면 성냥을 켤 수 없다고 했어요. 아빠의 성냥을 켜면 전나무 향이 나요. 그 향이 참 좋았어요. 어둠 속을 환히 밝히는 그 밤에 할머니는 자장가를 들려주었고요. 종종 푹신한 꿈을 꾸었어요.     


그러나 영광은 원래 오래가는 법이 없지요.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갔고요.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요.  성냥 공장이 생겨났고, 라이터가 등장했고 가스등과 전구가 등장했지요.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성냥을 만들었어요. 스스로 빛을 내는 성냥을 만들고 싶다고요. 아빠가 성냥 만드는 일에 골몰하는 동안 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이 되었고요. 사람들은 더 이상 아빠의 성냥을 기억하지 않았어요.


마는 지난날의 영광은 잊어야 한다고 해요. 엄마는 모든 걸 쉽게 잊고요. 분수에 맞지 않게 상냥했고요.

“12월엔 성냥을 팔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은 12월엔 양초를 켜겨든. 잠시 전나무 향 가득한 이 성냥을 추억할 거란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우리와 함께 가난한 날들을 꿈꾸는 기도를 하게 될지도 몰라.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고 오렴. 엄마의 푹신한 슬리퍼를 신고 가렴. 너의 상냥한 미소라면 우리 식구의 식량을 얻기엔 충분할 거야.”

 그러나 엄마의 슬리퍼는 너무 크고 헐렁했어요. 엄마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만큼요.        


물론 엄마 말대로 12월에는 성냥을 팔 수 있었어요.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당신의 심장 빛내 줄 성냥이랍니다. 그리 많은 돈은 필요치 않답니다. 성냥 한 개비에 원이면 되고요.”

 친절 아줌마가 다가와 말해요.

“가여운 아가야. 그 성냥을 이리 다오. 날씨가 추운데 슬리퍼가 너무 헐렁하구나. 발에 꼭 맞는 예쁜 신발을 사 신으렴.

성냥 한 개비 값에 덤으로 천원을 얹어주고요.

어쩌면 저렇게 마음이 고울까요. 소녀는 아줌순백의 구두를 기억해요. 매끄럽고 상냥한 에나멜 흰 구두요. 구두를 사기엔 없이 작지만 언젠간 빛나는 저 구두를 갖게 될 거예요.꿈을 꾸면 이루어진대요. 꿈에 부풀어 올라요.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당신의 멋진 구두를 비춰 줄 성냥을 사세요. 성냥은 한 개비에 천원이에요.”     


" 성냥 한개비 값이 너무 비싼 걸." 아저씨가 웃어요.

 "네온사인 가득한 곳에선  양초를 켤 필요도, 양초 심지를 태울 성냥은 더욱 필요치 않지. 그래도 너의 예쁜 미소와 목소리는 쓸모가 있구나.'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당신의 심장을 빛내드려요'. 그래. 그렇게 노래를 부르렴.  사람들 가슴 속에 풍선을 심어 주렴. 풍선은 바람을 잘 타면 날아오르지. 10분의 1은 내 몫이고 네 몫은 1로 하자. 오해는 말렴. 이 증서만 갖고 있으면 넌 곧 몇곱절을 만지게 될테니까. 풍선이 바람을 잘 타면 하늘에도 날아 오르지. 언덕 위의 하얀 집도 살 수 있고, 언젠가는 우주 별나라에도 가게 될 거야.”

꿈을 꾸면 이뤄질까요. 심장을 부풀리는 풍선의 노래를 불렀지요. 코인 아저씨는 멋진 신사였고, 충분히 친절했고, 점잖았으니까요.

     

소녀가 성냥을 팔러 다니는 동안, 아빠는 벌컥 술을 마셔요. 아빠는 마치 이제 세상에는 더 이상 꿈도 노래도 없는 것처럼 말해요. 아빠의 성냥은 더 이상 타지 않고요. "빌어먹을 세상"  말술을 마신 거친 밴댕곰이 오늘도 포효해요. 엄마의 상냥한 미소가 가증스럽대요. 밴댕앞에 서면 엄마는 밀랍인형이 돼요. 밴댕곰의 포효가 끝나면 밀랍인형은 버릇처럼 말해요.

 “상냥한 미소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단다. 상냥한 미소는 우리를 구해 줄 거야. 어서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고 오렴

엄마는 밀랍인형이니까요. 엄마의 슬리퍼는 너무 크고 헐렁해요. 더는 푹신하지도 않고요.


2. 깊은 어둠


집을 나왔어요. 거리를 헤맸고 슬리퍼를 잃어버렸어요. 엄마에게 배운 상냥한 미소로 성냥 한 개비를 천원에 팔 수 있지만, 이제는 순백의 에나멜 구두를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사실, 갖고 싶지도 않고요. 그녀의 구두가 감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녀의 친절도 구두만큼 불편하고요. 코인 아저씨의 친절도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지요. 바람 빠진 풍선은 바닥에 나뒹굴고요. 어쩌면 아저씨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말술을 마시고 있을지도 몰라요. 빌어먹을 세상.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둠 속에서 땅의 신음 소리를 들어요. 밀랍으로 봉해버린 누군가의 가슴이 쩍쩍 갈라지고 심장이 타고 눈물이 터져 나와요. 마른땅이 쩍쩍 갈라지고, 산불이 나고 홍수가 나요. 어둠 속에서 두더지들의 소리를 들어요. 빌어 먹을 세상. 추악한 벌레들. 락스로 세척해 둔 빛나는 변기 위로는 똥물이 역류하는 환영을 보고요. 네온사인은 여전히 밤을 환히 비추고 잠 없는 한낮의 영광이 지속되지만, 어디선가 자꾸만 어둠의 신음소리가 들려요.


이제는 성냥을 켜면 켤수록 어둠의 얼굴이 보여요. 어둠에 익숙해지면 알게 돼요. 어둠 속에서만은 모든 게 공평해진다는 사실을요. 어둠 속에서는 굳이 부러워할 무엇도 없고, 살을 간지럽히는 희망사라지지. 다만, 어둠 그 자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눈이 성냥이 비추고 있을 뿐이고요.


 그렇게 12월의 마지막 밤을 지나고 있었어요. 눈이 펄펄 내리고 하얀 눈의 나라에서 깨진 유리조각보았어요. 가이가 갔다는 눈의 나라의 실체를요. 눈 쌓인 어둠 속에 오래 그렇게 혼자였어요. 어린 날 아빠가 만들고 싶어했던 성냥개비 하나. "영혼을 담지 않으면 심지를 켤 수 없단다." 아빠가 잃어버린 노래. 그 노래와 함께 어둠을 밝혀 준 할머니의 노래들을  떠올리기 전까진...


3. 수면 위의 빛


 “할머니, 여긴 너무 추워요. 할머니의 품은 아장아장 따뜻한 나라였잖요. 한들한들 바람이 불고 강아지풀이 입술을 간질렸어요. 할머니는 늘 노래를 불렀어요. 밀과 보리가 자라는 노래요. 햇살에 반짝 밀과 보리가 춤추는 노래요. 달님과 별노래요. 숲에 사는 민달팽이의 노래도 기억나요. 할머니 곁으로 가고 싶요."


성냥을 켜요. 할머니를 떠올리는 동안 눈물 한 방울이 르르 가슴으로 와요. 성냥 불빛은 더 환해지고요.

그날 밤  불빛을 본 유성우 소녀를 품었고요. 소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어요.


"숲으로 가렴. 그곳에선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산딸기가 고 앵두가 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단다. 그곳에서 날과 날들의 가득한 기쁨 속에서 하루를 보내렴.

바바야가 올 거야.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켠 네 불빛을 보았거든. 그녀를 따라 가렴. 살아 온 날들과 살아 갈 날들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될거야. ”   

  

사람들은 모두 소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지요. 새해 첫날 소녀는 그렇게 차디차게 죽어 갔다고요.

하지만 사실은  바바야가 왔어요. 모두가 불행한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사이, 기적은 그렇게 일어난 거지요. 사람들 몰래요.  (누군가는 녀를 보고도 못 본 체한 것  같기도 해요.)

 저를 구한 건 아빠도 엄마도 아닌, 바바야였어요. 바바야는 어둠 속에 환하게 타오르는 심장 하나를 보고 달려왔다고 했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아직도 심장이 팔딱거리고 있잖아.”     

 

잠에서 깬 ,  그녀가  바바야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지요. 꿈에서 본 숲 속 오두막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고요. 그러니까 이게 바로 당신이 전혀 몰랐던, 또 다른 새해 아침의 영광스러운  기적에 관한 이야기예요.  



첫번째 소녀, 바바야의 이야기


숲 속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어요. 그곳에는 바바야살고요. 가까이엔 냇물이 흐르고 산딸기나무가 노래해요. 꽃 피고 새 날아요. 그리고 어둠의 골짜기를 지 온 바바야가 노래해요. 아주 어린 날 할머니가 들려준, 그러나 잊어버리고 있노래들을요. 


“ 내가 널 만날 수 있었던 건 네가 어둠 속에서 스스로 성냥을 켰기 때문이야. 네온사인 불빛에 널 팔지도 않았기 때문이. "

바바야가 해요. 소녀의 가슴속에는 물이 흐르고 기쁨이 흘러요.


"나는 골짜기를 넘었고, 그곳에서 죽은 뼈들을 보았어. 늘 거기 눕고 싶었어. 땅 속 깊이 고요한 그 자리. 사람들은 그런 나를 마녀 바바야라고 불렀어. 단지 어둠을 껴안고 산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들이 보지 않는 어둠을 본다는 이유로 말이지. 때로는 어린 날 숨바꼭질하듯 꽁꽁 숨겨두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지.


 홀로 있는 밤. 성냥을 켜고 어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른 뼈들이 부싯돌처럼 빛을 낸단다. 어둠 속에서 내가 가진 것도 네 아빠가 만들고 싶었던 그 성냥 하나였어. 어둠 속 스스로 빛을 내는 성냥 하나. 성냥을 켜면 시체가 되어버린 몸에는 빛이 스며들고 물빛이 일렁이지. 물빛을 노래하는 성냥 하나. 춤추는 성냥 하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제 몸을 태운 성냥 하나.


사람들은 때로는 신발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노래를 어버리지. 그렇게 그림자를 어 버리지. 하늘이 준 밤이 마치 아예 없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순백의 영혼인 듯 빛만을 쫓아가지.

너무 오랫동안 네온사인 불빛에 길들여져 그림자의 시간을 보지 않았어.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이치도 어버렸고. 마치 하늘이 준 밤이 아예 없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빛은 어둠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수천번을 말했지만 사람들은 까맣게 잊어버렸지.


어쩌면 네가 본 지구의 어둠은 이제 시작일 뿐인지도 몰라.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제 그림자를 쉽게 내다 버렸거든.  그러나 때는 결국 오고 말지. 멀리 버린 그림자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때.

지나간 일은 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미 늦었지만 다가오는 시간엔  제발 자신이 버린 그림자를 스스로 감당할 각오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오래도록 기다려 왔단다. 열두 번째 소녀를 말이야. 스스로 성냥을 켤 줄 아는 소녀를 말이야.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어둠이 빛으로 가는 온전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어하는 소녀를 말이야.

 살 만큼 살았고, 이젠 쉬어야겠구나.이젠 네 차례란다.  튼튼한 심장을 가져 가렴. 산돼지 늑대 위도 이젠 겁나지 않을 거야. 살아가는 날 동안 경험한 어둠을 통과해 빛으로 온전한 심장을 주마. 빛과 어둠이 나뉘고 땅과 하늘이 분리된 이곳에서 어둠의 노래와 함께 한 빛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렴.


그래요. 그녀는 노래고. 마지막 노래를 부른 후, 그렇게 갔어요. 내게 자신의 심장을 주고요. 그렇게 나는 그날 밤과 새벽으로 이어지는 새해  아침. 만났어요. 첫번째 소녀 바바야를요. 내 몸은 얼어붙었지만 얼어붙은 몸으로 결국 보게 된 건 진짜 사람의 온기였어. 어둠을 통과해 빛을 간직한 사람의 온기. 빛은 그렇게 찾아왔어요. 사실 아주 퉁명스러운 몰골을 하고 거칠게요. 빛이 아름다운 순백일 거라는 착각은 버렸지요. 때로는 아주 깜장 얼굴을 하고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오기도 하니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전해 들은 소녀들의 노래예요.    


에필로그


이제 난 성냥을 켜요. 사지도 팔지도 않을 성냥 켜요. 숲 속 오두막에노래해요.  이곳엔 풀잎의 속삭임과 출렁이는 냇물의 노래가 있어요. 내게는 바바야가 주고 떠난 지난 날들의 노래와 살아갈 날들에 대한 지도가 있어요. 남은 날들은 지나 온 어둠과 빛을 이어 실을 자을요. 그림자는 덜 키우고 분수껏 내 몫을 살 테고요. 이 오두막은 생의 잔잔한 기쁨을 누리기엔 충분하니까요. 어쩔 수 없는 어둠이, 지나간 그림자의 악령이 이곳에도 다시 찾아들 땐 성냥을 켜고 어둠 속에서 빛을 엮을 실을  테고요. 지금 당신의 성냥은 안녕한가요.불씨가 필요할 땐 가만히 어둠을 바라보세요. 어둠 속에서 빛을 켜는 당신의 눈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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