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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28. 2021

소설<알쏭당>

냄새

낯선 사람, 낯선 동네를 궁금해하면서 부딪히기보다 멀찍이 눈으로 보고 담고 싶은 나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짧게라도 천호동의 생소한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지 밤 기운을 저마다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바다에 들어가면 특유의 짠내가 반기는 것과 같이 천호동의 거리 복판에 들어서자 마구 뒤섞인 정체 모를 음식의 냄새와 그것이 스며들어, 사람의 냄새라고 착각이 들, 사람들의 옷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간혹 누군가 고성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리의 대다수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성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찢어지게 웃고 다녔다. 밤 기운에 술기운이 더해져 그들을 완벽하게 기분 좋게 하는 것 같았다. 어린 소년은 범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날이 찾아온다면 저들처럼 활짝 웃는 일이 많아질 거라 희망했다.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멀어질수록 골목은 어두워졌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떠드는 북적거림은 차츰 귓가에서 사라졌다. 미로 같은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마침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건 소년의 하늘을 덮고 서있는 표지판을 보고 나서였다.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 철판으로 서있는 굳건한 표식은 감히 발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금지라는 단어가 더 매력적인 연유는 금지되어 있어서 일 거다. 법으로든 규칙이든 도덕적이든 하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섭게 빠져들 여지가 있거나 중독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빗장을 걸어 잠근 거라고, 고로 금지된 모든 것은 인간이 사족을 못쓰고 미친 듯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엇이라고, 소년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골목이라고 보기엔 꽤 넓은 길목에는 표지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휘황찬란한 빛들이 넘실 거렸다. 어쩌면 눈을 부시게 만드는 빛이 좁은 골목을 생각보다 넓게 보이게 하는 후광 효과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어? 이 놈 보게~ 집에 가서 공부해 임마~어이~"

술에 거하게 취한 중년의 남성 둘이 히마리 없는 손을 내저으며 내게 말을 하고 서로 쳐다보며 히히덕 거렸다.

밤이라고는 잊은 듯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 남자들은 굴절되어 심하게 늘어지는 불빛처럼 사선을 그리며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서서히 빛을 찾아 다가가자 양 사방에서 폴 댄스를 능숙하게 하듯 여성들이 문고리에 의지한 체 남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들은 간절히 애원하듯 손을 힘껏 뻗는 그녀들의 구애를 익숙하게 사양하고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순간 형체가 사라졌다. 성을 사고파는 집창촌이었고 흔히들 "천호동 텍사스"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천호동이라는 동네와 미국의 동네가 합쳐진 신조어일 수도 있었고 외래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혼종 된 새로운 지명일 수도 있었다. 조금 전 아버지의 사무실의 건물 입구에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빛나던 "성인 나이트"도 그와 비슷한 거라고 소년은 추측했다. 남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언뜻 드러내는 그녀들의 몸짓은 판에 박힌 듯 비슷했지만 돈을 지불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의 것이 된다면 또 모르는 일이었다. 소년은 아비가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지를 견학 갔다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밤이라는 공간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웠다. 네온사인과 핑크빛 조명 아래로 하나둘씩 집결하듯 걸어 들어간 사람들은 사무실의 아버지 마냥 환한 웃음을 지을까, 내게 말을 걸었던 중년 남자들은 손짓으로 금지를 말하고 있지만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설렘은 숨길 수 없었다.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시는 표정을 흉내 냈다. 엄마는 배를 잡고 까무러치게 웃었다.

그의 표정은 그날의 주식 시황을 보여주는 전광판이었다. 미세하지만 분명히 달랐다. 경마장 말의 신체적 상태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건 기업의 주가였다. 말의 운동 신경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기업의 재무상태는 어느 날 갑자기 휴지조각이 되기도 하였다. 그날따라 엄마는 그의 기분 상태를 예의 주시했다. 늦은 저녁을 차리며 간간히 하던 볼멘소리도 잊은 듯했다. 그리고 전에 없던 고요한 저녁 식사를 했다. 다음 날, 사회면 구석탱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증권회사 직원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아버지와 같은 회사의 지점장, 같은 직책이었다. '주가 폭락으로 고객의 돈을 날린 증권사 직원 투신자살'

엄마의 말에 의하면 매주 월요일 사장단 회의에 아버지 바로 옆자리에 앉는 강북지역의 지점장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으로 지점의 큰손 고객들 돈을 수십억 날린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췄고 며칠 전 경기도 양주의 어느 산기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했다. 그날 이후부터 아버지는 티브이를 끄지 않은 체 소파에서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금융회사에 다니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라며, 니 애비가 이런 정글에서 일한다고, 약간은 호방하고 으쓱되며 말했고 소년은 죽음을 항시 염두하는 직업은 군인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삶이 전쟁이라면 "머나먼 정글" 속의 게릴라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의 열대우림 속을 총기와 전열로 유지한 체 걷는 것은 허연 대낮이어도 어둠일 거고, 집채만 한 푸른 잎사귀도 악귀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생지옥 일거라고 소년은 티브이 속 희미한 불빛에 기대 소파에 잠든 애비를 보며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머나먼 정글-월남전 당시, 미군을 중심으로 전쟁의 참혹성과 실태를 리얼하게 그려낸 미국 전쟁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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