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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12. 2023

30대 워킹맘, 나를 사랑하는 법



두 달에 한 번씩은 염색을 하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다. 둘째를 낳은 후로 부쩍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흰머리는 유전이라더니, 안타깝게도 엄마의 흰머리 유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엄마는 40대부터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기 시작했다는데, 나는 30대 초반부터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머리에서 숲을 이뤘다. 아무래도 두 아이의 출산이 내 몸의 영양분을 싹 빼간게 분명하다. 그러니 두 달에 한 번은 미용실을 찾아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뿌리 염색을 해야했다. 고작 33살인 지금부터 흰머리를 떠안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워킹맘으로 살며 미용실을 주기적으로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한인 미용실을 가려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동네에도 미국 사람이 운영하는 평범한 미용실이 있긴 하지만, 왠지 가기가 꺼려진다. 미국인과 한인의 헤어 스타일은 극명한 차이가 있는 데다 나의 경우 미국 미용실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나 할까. 과거 유학생활을 할 때 친구들이 미국 미용실에 갔다가 머리가 우스꽝스럽게 변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염색하며 원장님과 수다를 떠는 게 내게는 힐링의 시간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미용실. 회사에 취업한 이후로 이곳을 들락날락 했으니, 이곳을 다니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6년차다.


머리를 할 때면 내가 날 위해 무언가 좋은 걸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제가 볼 때 인희씨는 자기 자신을 굉장히 사랑해주는 사람이에요.


원장님의 말에 뭔가 가슴에 찡한 기운이 올라왔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흥미로운데, 특히나 긍정적인 피드백일 땐 어쩔 수 없이 기분이 마구 들뜨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니. 근사하다! 그건 내가 원하던 내 자신의 모습이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나 보다는 자식과 남편이 우선 순위에 오른 날들이 많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현실이 그랬다. 내 하루만 봐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쓰는 시간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 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만을 위한 시간도 확보해야 했다. 엄마, 아내이기 전에 나는 '나'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구두쇠의 마음으로 시간을 아껴쓰는 게 관건이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나'를 지킨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먼저, 일하는 시간은 내가 내 이름으로 살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다. 기자라는 특성상 일을 할 때면 '석인희 기자'라는 바이라인이 기사 말미에 꼭 따라붙는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 이름이 불리는 경험은 차츰 줄어들고 만다. '~맘'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그려지듯 '내 이름'으로 불릴 때 나는 비로소 나라는 온전한 꽃이 될 수 있다.


어떻게든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 하는 건, 내 이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나날들을 잘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일이 없었다면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들 속에서 나의 자아가 녹아 상실해버렸을 것만 같다.


운동

30대의 운동은 미용도 미용이지만,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상이다. 살림, 육아, 일을 모두 해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다. 아프면 그 어떤 것도 해낼 수가 없다. 몸살 기운이 올라올 것 같으면 아찔해지는데, 내가 아프다고 해서 취소할 수 없는 일정들로 일주일이 꽉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 컨디션이 나빠지만, 정신건강 또한 최악으로 치닫는다. 우울감이 내 안에 차오르면, 당연히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짜증과 불만이 올라온다.


불평불만 없이 감사하게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운동으로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과거에는 마른 몸을 꿈으며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했다면, 이제 내게 운동은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상의 원료다. 달리기, 요가, 테니스 등 날마다 다른 운동을 하고 있어서 질리지 않고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다. 점심을 안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하루 1운동은 꼭 사수하는 편이다. 운동으로 얻어낸 아드레날린, 도파민 덕에 비교적 매일 기분 좋게 육아와 일을 할 수 있다.



고요한 시간

하루 중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고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은 주로 아이들이 학교간 후 카페에 갔을 때, 아이들이 잠든 후 이렇게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가질 수 있다. 이 시간에는 그저 '나'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감정의 파고들. 감정의 서랍을 열어 이땐 이랬구나, 그땐 그랬구나 내가 느낀 감정들을 들여다 보고, 매만져본다.


일기를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하면서 너무도 부족한 나만의 시간들을 마음껏 누려본다. 이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도 채 안되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데, 그만큼 부족해서 늘 갈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난 후에는 충분히 많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므로 지금은 그저 갈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로 한다. 하루 단 30분이라도 좋으니, 고요한 시간이 확보된다면 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을 위한 시간들. 일, 운동, 혼자만의 시간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일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챙겨주겠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듯 나를 돌본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내 모든걸 가족들에게만 먼저 내어주고, 나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싶지는 않다. 나와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성장의 길로 함께 걸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내 자신을 아껴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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