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못 갈 땐, '여행기'라도

코로나19 위기 속에 여행이 가고싶은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by Iris Seok

코로나19로 전세계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2020년. 2020년의 연말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코로나19 확산 기세는 멈출 줄을 모른다. 독감 시즌과 함께 날씨가 서늘해지면 바이러스는 더욱 맹렬하게 그 세력을 넓힐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에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날 수 없다. 모두가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여행을 가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한 억울함은 크게 없지만...다만, 기약없는 현 상황에 '과연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하는 서글픈 마음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나에겐 필살기가 있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이후 현실의 여러가지 이유들에 발목이 붙잡혀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써왔던 필살기. 바로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일이다.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 일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줬다. 여행기를 읽을 때면 나는 물리적인 장소이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인 장소이동은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최근 집콕 생활을 하며 서재에 꽂힌 여행 관련 책자들을 뒤적거린다. 평소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 일을 좋아해 여행 관련 책이 꽤나 꽂혀있다. 오늘은 어느 곳으로 가볼까, 기분 좋은 고민을 해본다. 일본, 태국, 프랑스, 포르투갈... 갈 수 있는 곳은 많았다. 그러다 지난주 서점에서 구입해온 <드로잉 인 포르투갈> 책을 꺼내 들었다. 작가가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곳곳에서 그린 그림들과 짤막한 글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도시의 경관이나 거리, 건물, 사람, 음식 등을 그린 일명 '어반스케치' 책이었다.

어반스케치로 구성된 여행기를 사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선 작가가 여행지에서 본 것들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감상한다는 점에서 사진첩보다 간접적으로 여행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림을 통해 나의 상상력은 배가 돼 여행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러다 정말 궁금한 곳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이용해 검색해보기도 한다. 작가가 그림으로만 보여준 장소와 음식들을 실제 사진으로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마치 작가의 비밀을 파헤쳐 낸 것만 같은 그런 묘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읽던 여행 책들은 대개 사진과 글로 구성돼 있었는데, 그림과 글의 조합은 상상이상으로 여행지를 현재의 나에게로 가져다줬다. 작가가 순간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 뚫어질듯 바라봤을 장소들의 멋진 결과물들을 책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어 값졌다.


작가는 먹음직스러운 그림과 함께 음식의 맛에 대해서도 맛깔난 설명을 곁들였는데, 특히나 '파스테이스 데 벨렘'의 '에그타르트' 부분에서 에그타르트가 한 입 먹고 싶어 침이 꼴깍 넘어갔다.



"과연 얼마나 맛이 다를까 싶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는 역시! 확실히 달랐다. 속의 달걀크림은 덜 달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겉을 이룬 페스트리 부분에서는 단맛과 짠맛이 조화로웠다...금방 입안에서 녹아 사라지는 에그타르트를 보며 '여기 에르타르트 2개 추가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p. 30)


대체 어떤 에그타르트이길래 이런 찬사가 나올까 싶어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봤다. 다른 이들의 후기담도 작가와 흡사했다. 포르투갈에 언젠가 가게 된다면 이곳은 꼭 가보리라. 일단 집 근처 빵집의 에그타르트를 조만간 사먹어야겠다.



작가의 그림과 글을 따라 포르투갈의 이곳 저곳을 함께 여행하다보니,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됐다. 친구네 부부가 2년 전쯤, 유럽으로 신행여행을 다녀오고선 가장 좋았던 곳을 물어보니 고민도 없이 포르투갈을 꼽았던 기억이 스쳤다. 이탈리아만 가본 나로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다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지만, 내 발로 아직 밟아보지 못한 곳들. 유럽의 곳곳을 누빈 커플 마저 최고의 나라로 치켜 세웠던 포르투갈.


그러고 보니 앞서 구입한 여행책자들 중에서도 포르투갈이 여행지인 곳이 두권이나 있었다. 임경선 작가의 <다정한 구원>에서 그리고 디에디트(하경화, 이혜민 지음)의 <어차피 일할 거라면, Porto>에서도 포르투갈을 느꼈었다. 책마다 그리고 있는 포르투갈의 모습이 다채로워서 더욱 더 그 나라가 궁금해졌다. 지금 당장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가볼 수는 없겠지만 책으로라도 그곳을 느끼며 흡족해한다.



김지효 작가 <유럽에서 100일 1권> p. 148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 <유럽에서 100일>에서도 여주인공은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그게 바로 '어반스케치'였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들은 본인이 보고 겪은 곳들을 그 자리에서 시각화할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럽다, 그들의 재주가.


아마도 난 여행지 위에서 글을 쓸 테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은 상상 속에서 여행지 위를 하염없이 걷고 있다. 타인의 글과 그림, 사진에서 여행지를 느끼고, 마음껏 꿈꿔 본다. 내가 다음에 가게될 여행지는 어디일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내가 가장 먼저 비행기를 타고갈 그곳은 어디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베어나온다.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만큼이나 근사하다.










이전 11화아줌마가 된 후 20년 만에 순정만화를 읽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