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달살기를 하러 온 친구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뭐랄까,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함께 있기는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 우리가 보통 한국에서 만날 때면 우리는 늘 꽉 채워진 하루를 함께 보냈다. 아침 일찍 만나 저녁이 될 때까지 최소 8시간은 풀타임으로 수다떨기 바쁜게 우리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함께 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끼리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우리 곁에 늘 다섯 아이가 함께였으니까. 10년 만에 다함께 LA에 있는데도,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게 아이러니 하면서도 몹시 아쉬웠다. 아이들이 썸머캠프에 간 시간에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으므로, 친구 A와 B는 둘이서만 LA 나들이를 나갔다.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아, 나도 함께 놀고싶다!'는 아쉬움이 절로 들었다.
내 아쉬운 마음은 남편에 의해 채워졌다. 아이들을 봐줄테니 친구들과 자유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선뜻 말해준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먼저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는 뜻을 내비쳤고, 남편이 그에 응한 것이지만은. 친구들은 내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이들을 모조리 맡기고 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난 친구들을 설득했다. 딱 3~4시간의 자유일뿐이라고.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언제 우리가 미국에서 자유시간을 가져볼 수 있겠냐고. 친구들은 못내 지는 척 내 말을 따라줬다.
그리하여 친구 A, B, 나. 3명의 자유부인에게 황금같은 3시간이 주어졌다. 남편은 남자 아이 네명을 돌봐주기로 했고, B의 딸은 LA에 사는 고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LA 동쪽 지역에 거주하는 또다른 대학 동기인 친구 S를 불렀다. 만남의 장소는 평소 눈여겨 보았던 LA 핫플인 'Laurel Hardware'로 정했다. 겉은 철물점처럼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면 동화속 분위기가 나는 이곳은 오랜 기간 LA의 핫플레이스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식당에 다함께 입장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 소리를 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멍한 느낌.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저녁을 먹이는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20대의 우리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우리에게도 딱 우리만 생각하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 20대의 철없고, 무해한 우리를 떠올리며 나와 친구들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술도 못하는 친구들이 기분을 내야 한다며 와인을 시켰다. 서로의 와인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로 살면서 각자의 오롯한 시간은 포기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시 이런 날도 왔다. 우리들은 대학 시절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깔깔대고, 10년 후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 다시 20대처럼 자유롭게 놀러다니며 살자고 미래를 기약했다.
12시면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시계바늘이 오후 8시30분이 넘어가자 우리는 돌아갈 채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려면 적어도 그때는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 식당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2시간 안팎에 불과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는 친구 S는 황홀한 시간을 뒤로 하고 서둘러 집에 가야한다며 일어서는 우리를 보고 "정말 모두들 엄마가 다 됐네"며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친구 A, B는 S를 껴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언제 또 다시 만나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몇 년 안에 꼭 다시 보자며, 그때까지 잘 살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눈가에 눈물이 맺힐뻔했다. 울기 싫어서 기어코 참았지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충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친구들은 사실 내 남편에게 미안해서 이 저녁 약속은 포기하려 했지만,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꿈처럼 아릅답고 예뻤던 밤. 이런 날이 멀지 않은 미래에 또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