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미국 우리집에서 이뤄진 엄마 셋, 아이 다섯의 한 달 동안의 동거는 우리 모두의 예상과 우려와 다르게 순항했다. 어른들간의 크고 작은 싸움이랄지, 서운함, 오해 등의 불화는 없었고 (내 시점에서), 아이들은 자주 투닥거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사이좋게 잘 놀았다. 가장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내 남편은 동거 기간의 2/3를 한국에 가있던 바람에 생각보다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고로 모두에게 평화롭게 기억될 2024년의 여름이었다.
동거 생활이 끝자락에 다가갈 수록 어른도 아이도 아쉽기만 했다. 특히 동거 중간 무렵부터 수시로 싸웠던 아이들도 헤어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마지막 일주일간은 서로 딱붙어 지냈다. 밤 11시가 되도록 같이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며 노느라 잠을 못이루는 날도 많았다. 엄마들 모두 아이들이 키가 크고 건강하기 위해 무조건 10시 전에는 자야한다는 교육관을 가졌지만, 그 시기만큼은 눈을 감아줬다. 아이들이 느끼는 아쉬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친구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날 거라 예측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린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이별했기 때문이다.
친구 A가 한국에서 온 남편과 함께 먼저 라스베가스로 떠났고, 그 때 우리는 다같이 한 번 굿바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날 친구 B는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 C와 함께 밤 늦게까지 수영을 하며 놀았다. 그리고 친구 B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 C 집을 향했고, 그녀는 LA에서 2주 동안 더 머물 예정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그 다음주에 마지막 피날레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또 가기로 했다. 한평생 갈 유니버셜을 이번 여름에 다 간 것만 같다.
그뿐인가. 라스베가스에서 돌아온 친구 A 가족은 다시 LA로 돌아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우리와 다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물으나 마나 우리 모두 콜.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질척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또했다. 그러다보니 왠지 다음주에도 또 만날 것만 같고,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좋았다. 눈물콧물 다빼는 울고불고 식의 슬픈 이별은 싫으니까.
우리는 다음에 다가올 썸머캠프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 다음에는 런던에서 썸머캠프를 해볼까. 미국 동부는 어때. 캐나다는 어떨까. 과거의 우리가 LA에서의 썸머캠프를 몇 년 동안 이야기한 끝에 2024년, 상상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들이 지금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 또한 언젠가 현실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십대 중후반, 철부지였던 우리가 모두 결혼을 해서 어느덧 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매년 여름을 즐겁게 보낼 계획을 짜고 있다. 우리는 함께 나이들어 가고 있고,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듬직한 존재로 곁에 있을 것이다. 올해 여름은 우리가 함께 보낸 첫 여름이자 우리에게 다가올 향후 수많은 여름날의 본보기다. 우리에게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며 뜨거운 안녕을.